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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종말? 또다시 불붙은 ‘종말론’ 들여다보니...
모든 ‘끝’은 슬프다. 그럼에도 모든 ‘그들’의 시계는 일 년 후로 맞춰져 있다. 그것은 2011년을 사는 이들도 5000여년 전을 살던 이들도 그러했다. 과학자들은 과학을 토대로 ‘끝’이라는 비현실적 세계에 논리를 들이대고, 예언가들은 장구한 언어 안에서 위대한 시로 ‘끝’을 읊조렸다. 그들 종말론자의 그 날은 이제 머지 않았다. 지구상의 시계가 멈추는 날, 2012년이다.

영화 ‘스타워즈’는 희망의 서사시였다. 영화 속에서 인류는 끝없는 상처와 반목을 끝내 극복하고 승리와 생존의 길로 나아갔다. 이 역작을 만들어냈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최근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비관적 미래론을 제시하고 나서 충격을 줬다. 노감독의 ‘진지한 잡담’은 새삼스러웠기에 충격이었으나 ‘단서’는 이미 제시됐다. 그 희망의 서사시에서 두 개의 태양은 하늘을 메웠다. 장소는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의 고향 행성 타투인(Tatoine). 이 두 개의 태양이라는 단서는 현실에서 수없이 제기되는 종말론 가운데 하나였다. 
[사진=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호주의 한 물리학자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적색 초거성 베텔기우스가 중력붕괴 징후를 보이며 질량을 잃고 있다. 2012년 내에 대폭발을 일으켜 지구에서 태양 2개가 떠오르는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언의 역사는 길었다. 마야력은 2012년 12월 21일에 인류의 역사가 멈추리라고 예언한다. 5000년 전 복희왕이 만든 주역에서도 2012년을 그 날로 명명한다. 인류의 마지막은 종교와 문화권, 과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스크린에서는 이러한 현실의 종말론을 앞다투어 반영했다. 거기에는 행성의 충돌(‘아마겟돈’)이 있었고, 핵의 폭발(‘코어’)이 있었으며, 마야인의 예언(‘2012’)도 있었다. 종말로 끌고가는 모든 원인을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찾기도 했고, 가장 암담한 종말은 스스로에게 고하는 종말의식(‘피크닉’)임을 우울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넣기도 했다.

갖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세계는 현실의 숱한 그것들보다 조악할지 몰라도 의미는 하나였다. “희망없는 별에 사는 당신, 지금 행복하십니까.” 과정은 달랐지만 결론도 하나였다. “그 슬픈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끈을 놓으시겠습니까? 잡으시겠습니까” 인류는 희망을 간구했다. 영웅을 만들어 인류를 구원했고 암흑을 걷어내고 두 개의 태양보다 빛나는 하늘을 인류 위에 가져다놓았다. 모든 슬픈 ’끝’에도 희망은 있었다. 

▶ ‘외부로부터의, 가장 긴박감 넘치는 종말’, 혜성·소행성 충돌=텍사스주 크기의 소행성이 시속 2만2000마일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온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는 기가 막힌 해법을 내놓는다. ‘아마겟돈(감독 마이클 베이, 1998)’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타(利他)’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던 반영웅들의 ‘지구 구하기’를 다뤘다. 소행성에 핵폭탄을 설치해 그 진로를 변경하는 게 작전의 최종 목표. 최고의 유정 굴착 전문가인 해리 스탬퍼(브루스 윌리스)와 그의 동료들이 소행성을 향해 날아가 사투를 벌인다. 반영웅들은 우직하고 명민한 영웅이 돼 반짝거리는 희망의 생을 선물한다.

다가오는 천체에 ‘폭파로 궤도 바꾸기’라는 해법을 적용한 영화는 또 있다.

미미 레더가 연출한 ‘딥임팩트(1998)’는 혜성 충돌과 그 이후의 상황까지를 그려냈다. 1년 전 발견된 혜성은 뉴욕시 크기에 무게가 5000억 톤. ‘선택된 인류’인 우주비행사 키니(로버트 듀발)는 혜성에 착륙해 핵폭탄 장착을 시도한다. 폭발은 보기좋게 일어나지만 궤도 변경은 일어나지 않고, 혜성은 결국 대서양에 떨어진다. 위기를 극복한 인류는 새 인류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부로부터의, 우리 내부로부터의 종말’, 지구 핵의 정지=영화 ‘코어(감독 존 아미엘, 2003)’는 ‘아마겟돈’ ‘딥임팩트’와는 정반대의 종말 원인을 내놓는다. 바로 지구 핵의 회전 정지로 인한 기상 이변과 재난. 지구 핵을 다시 돌려야 산다. 하지만 어떻게? 핵폭탄이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나. 지구 핵 ‘코어’에 들어가 핵폭탄을 터뜨려 회전을 재개시킨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천도의 지열과 어마어마한 압력을 뚫고 코어까지 어떻게 들어갈 것이냐, 엄청난 충격파를 피해 어떻게 귀환할 것이냐다.

▶‘만물의 근원이 시들다’, 태양의 죽음=태양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의 빛과 열이 없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붕괴되고 만물은 고사한다. 영화 ‘선샤인(감독 대니 보일, 2007)’은 태양의 죽음을 다뤘다.

서기 2057년, 지구는 서서히 죽어가는 태양으로 멸망에의 초읽기에 돌입한다. 마지막 희망은 이름도 의미심장한 우주선 ‘이카루스 2호’에 달렸다. 핵폭발로 죽어가는 태양을 다시 살린다는 것이다.(또, 핵이다) 그러나 태양에 도달한 이카루스 2호는 7년 전 같은 임무로 떠났던 이카루스 1호를 발견하면서 혼란에 빠져든다. 영웅들의 귀환은 험난해진다.

▶ ‘모든 재앙은 예고됐다, 숫자로’ 묵시록적 종말=‘다크시티’에서 독특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지난 2009년 한 편의 종말론 영화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일찍이 ‘뉴에이지 아마겟돈’이라는 평가를 받아든 ‘노잉’이다. 50년 전 묻은 타임캡슐에서 일련의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발견되고, MIT 교수 테드(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숫자들이 지난 50년 간 일어났던 재앙을 정확히 맞췄다는 사실을 찾아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앙을 막기 위한 사투의 시작. 사실적인 재난 장면과 충격적 반전이 기다린다. 

▶‘인류의 유훈’ 마야인의 예언=인류 최초의 종말을 고하는 말들은 아름다운 고대의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200년 전, 이미 그들은 2012년12월 21일 세상이 멈춘다고 했다. 마야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인류의 유훈'이 됐다. 그들의 예언에 현실에서의 갖은 종말론들이 고개를 내밀고 꿈에서의 종말론이 확장된다. 영화 ‘2012(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2009)’가 그랬다.

‘2012’는 제목부터 마야인의 예언을 보여줬다. 태양이 6번 사라질 때 혹은 일식이 6번 일어날 때 인류가 멸한다는 영화였다. 지상을 뒤덮는 것은 거대한 바닷물이었고, 그도 모자라 땅끝은 갈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은 재난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류의 종말을 끌어낸다.

▶한낮에 떠나는 ‘우울한 소풍’, 세상의 끝과 인생의 끝=“달이 완전히 피처럼 붉게 변했고,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졌다. 모든 산들과 섬은 그 자리를 떠난다” <요한계시록 중>

‘최후의 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일상적인 계기를 통해서였다. 하루 하루 성경을 통해 새 삶을 얻고자 했던 청춘들이었으나 그 흐름 끝에 맞닿게 되는 것은 최후의 날에 대한 서술이었다. 영화 ‘피크닉(감독 이와이 슌지, 2005)’‘은 정신병원의 높은 담 안에 살고 있는 청춘들에 찾아온 최후의 순간을 기록한다. 이들이 떠나는 소풍은 한낮의 우울함이다. 출발 전의 설렘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시 돌아와 시작하기 위한 ’떠남‘이 아닌 영원히 떠나기 위한 ’떠남‘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성경 속의 ’세상의 끝‘은 이제 스스로의 ’인생의 끝‘으로 맺어진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의 이야기, 나 자신에게 스스로 고하는 종말론 ’피크닉‘이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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