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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금융기관 탐욕과 정권 몰락의 방정식
임진ㆍ병자 양 난(亂)을 겪은 조선 후기 징세관련 부조리인 ‘삼정문란’이 나타났다. 영ㆍ정조 때 개혁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아 끝내 조선 멸망의 한 이유가 된다. 최근 감사원와 공정위 등의 조사로 드러난 은행 등 금융기관의 행태를 보면 삼정문란의 망령이 떠오른다.

학력에 따른 대출조건 차별은 신분따라 양반과 향리 등에 면제하던 세금을 농민에게만 부과하던 족징(族徵)이다. 사망자에게 카드를 발급한 것은 망자에도 세금을 내라던 백골징포(白骨徵布)와 다름이 없다. 은행이 대출조건을 조작한 것은 아이를 어른으로 둔갑시켜 세금을 더 걷으려던 황구첨정(黃口簽丁)이라 할 만하다. 보험사들의 보험료 부풀리기는 세금과다 징수인 도결(都結)과 닮은꼴이다. 증권사들이 특정 고객을 위해 불법 자전거래로 다른 투자자 이익을 침해한 것은 다른 이에 세 부담을 떠넘긴 인징(隣徵)이다. 저축은행 장부 조작은 허위 세금보고서 번작(反作)의, 은행의 CD금리를 악용은 세금을 고리로 뜯어낸 장리(長利)의 현대판이다. 과연 금융기관인지 탐욕기관인지 헷갈릴 정도다.

언뜻 금융권만의 문제인 듯 싶지만 따지고 보면 정권 탓이 크다. 금융은 규제산업이고, 그래서 정부의 강력한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 과거를 봐도 금융정책의 공과(功過)는 정권의 그것과 일치해 왔다.

YS시절 외환위기는 금융기관의 무차별적 외화 차입과 기업대출에서 비롯됐다. DJ 때는 신용카드 대란이, 참여정부 때는 부동산 투기 바람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경제대통령’을 자부했던 현 정부는 저축은행 사태로 실세들이 잇따라 철창행이다. 지금 4대 금융지주 회장에는 모두 이 대통령과 학연ㆍ지연 등으로 얽힌 측근들이 앉아 있다.

요즘 화두인 ‘경제민주화’는 자본의 효율적 재분배가 중요하고, 금융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미국이, 유럽의 선진국이 겪는 경제위기도 금융기관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한 탓이 크다. 공자는 ‘호랑이보다 가혹한 세금이 더 무섭다(苛政猛於虎)’고 했지만, 오늘날 가혹한 세금보다 무서운 건 금융기관의 탐욕이다.


<홍길용 기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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