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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생각
이 책은 사실상 대선공약집
너무 성급하게 펴낸 건 아닌가
처음부터 제대로 준비해
다음을 도모함은 어떤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새 저서 ‘안철수의 생각’의 파괴력이 대단하다. 우선 몇 초에 한 권씩 팔릴 정도라는 폭발적 반응이 놀랍다. 어쨌든 책이 나오면서 한동안 정체를 보이던 지지율은 다시 탄력을 받고 대선판은 요동을 치고 있다. 적어도 ‘안철수 현상’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이 책 한 권으로 거듭 입증됐다.

책이 나오기 무섭게 비판자들의 냉혹한 반격이 시작됐다. 사실상 안 원장의 대선공약집이라고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지적하는 내용들도 매우 날카롭고 분석적이다. 부문별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고, 이를 종합하는 식견이 부족해 운동권에 갓 입문한 대학생 수준의 논리라는 등 혹평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조목조목 반박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거론한 내용들이 그의 평소 소신과 철학을 온전히 담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너무 성급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 원장의 말처럼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유력한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게 불과 10개월 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틈나는 대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전문가들로부터 ‘과외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정리한 게 ‘안철수의 생각’인 셈이다. 인터뷰 등 제작과 집필 과정에 필요한 시간을 제하면 ‘학교 일에 매진’하면서 공부한 기간은 그나마 몇 달 안 된다. 자기의 것으로 다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사실 그리 어려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그동안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이 언론 등을 통해 적시한 각종 이슈의 접근과 해법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요약해 정리한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룬 분야도 너무 방대하다. 아무리 천재적 학습능력을 가진 안 원장이라도 모든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갖출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두고 문장 한 줄, 단어 하나까지 밑줄 쳐가며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당초 ‘안철수의 생각’을 주목한 것은 안 원장의 국가경영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만으로는 그 판단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저 그가 어떤 성향의 인사인지 윤곽만 알려줄 뿐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다양한 자리를 통해 채워나가겠다”고 했다. 시간이 넉넉하면 좋지만 대선까지는 불과 넉 달밖에 남지 않았다. 설령 충분히 설명을 하더라도 이를 검증하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국가경영 능력과 함께 정치력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너무 바쁘다.

찌는 듯한 무더위와 런던올림픽의 열기가 아니더라도 요즘 안 원장은 밤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기대에 부합할 능력이 있는지 고민의 폭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결단’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다.

그렇다면 아예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처음부터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떤지 권하고 싶다. 이번이 아니라 다음을 도모해보라는 것이다. 의사, 기업인, 교수 안철수가 아닌 정치인 안철수로서 경험을 더 쌓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도자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수영장 아닌 거친 바다로 가 파도와 부딪치며 힘을 기르고 이를 토대로 정치와 사회를 개혁해보라는 것이다. 지금의 안철수는 너무 불안하다. ‘안철수의 생각’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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