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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 김성식> 경제민주화와 한국판 뉴딜
비정규직 차별 해소·축소 등
고용 질 개선되야 경제 민주화
여야 입법 대결으론 해결 안돼
정치·사회 협약적 접근 필수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관련 법률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공정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새누리당은 재벌총수 범죄 처벌 강화 등 3호 법안까지 내놓았지만, 전체 맥락은 아직 알 수가 없다. 민주당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관련 입법 꾸러미를 앞세웠는데 실제 국민에게 무슨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법률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ㆍ사회적 이슈들은 법만으로는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는 궁극적으로 하청 피라미드에서의 이익배분구조 개선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 및 축소 등 고용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때 국민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상생의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과연 법은 그 기준과 장치를 완벽하게 구축해 낼 수 있을까. 2차, 3차 하청의 경우는 또 어찌 해결할 것인가.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간제 근로자법을 만들었지만 2년 이전의 해고가 일상화되었고, 사내하도급 방식의 간접고용도 풍선처럼 늘어났다. 이렇듯 이기심은 늘 우회로를 찾는다.

경제민주화란 여야가 티격태격 국회에서 입법 대결을 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덩어리가 아니다. 정치적 접근과 사회협약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대공황 직후 치열한 정치과정을 동반했던 루즈벨트의 뉴딜, 커다란 갈등과 위기 앞에서 사회적 타협의 산물로 탄생했던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과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등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험성은 양극화는 심한데 사회적 협약을 만들어낼 여건이 취약하다는 데 있다. 노조의 조직률은 10%로 OECD 최저수준이다. 그마저도 챙길 것 챙기는 정규직 강성 노조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노동권 사각지대로 나뉘어 있다. 반면 재벌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져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정치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선도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큰 틀에 대해 여야 정치권부터 합의를 이루고 함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순환출자 등 재벌 경영권 관련 사항은 크게 건드리지 않는 대신 투자를 늘리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다. 또 대기업의 세금부담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투자 확대 약속은 돈이 되는 아이템이 발굴되지 않는 한, 공수표가 될 뿐이다. 양극화 완화는 복지와 같은 2차 분배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으며, 거래 및 고용 단계에서의 1차 분배가 개선돼야 한다. 즉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해소와 대ㆍ중소기업 상생 및 하도급 문제의 해결이 핵심이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대기업 집단과 정규직 강성노조의 책임있는 양보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경제체질 개선과 복지시스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정부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크다.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최근 빵집에서 재벌이 철수한 일도 법이 아니라 들끓는 여론 때문이었다. 이제 정치가 주도하는 한국판 뉴딜을 생각할 때다. 부를 늘려가는 성공적 행위가 국민 모두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명예로운 행동을 보일 때라는 것을 경제적 강자들에게 설득하는 능력,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률에 의해 족쇄가 채워진 공간에 처해질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양동의 정치전략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이기적 질주를 이타적 공조로 보완할 때 가능하다. 이리저리 밀치면서 아득바득 혼자 헤쳐나갈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조율된 공생의 틀을 선택하자고 호소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정치의 역할이다. 각 대선주자들은 국민과 정당, 그리고 각 경제주체들을 향해 정직하고 담대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서로 싸우는 정치를 그대로 두고 쪼잔하게 입법안만 흔드는 것은 당랑거철의 무전략이거나 대선용 시늉내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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