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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출산 인프라 붕괴는 국가적 재앙이다
의료 취약지역의 산부인과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시ㆍ군ㆍ구가 54곳에 이른다. 228개 기초자치단체 4곳 가운데 1곳은 아기 받을 의사가 없는 셈이다. 이들 지역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지난해만 대략 2만명이다. 2만명의 임산부들은 인근 도시로 의사를 찾아 출산원정을 떠나야 했다. 1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원정길은 불편은 물론 자칫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분만시설이 단 1곳뿐인 시ㆍ군도 32곳이나 된다. 이들 역시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산부인과 무의촌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출산 인프라가 너무 허술하다.

하긴 산부인과 부족이 의료 취약지역만의 현상은 아니다. 출산율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분만 산부인과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1000곳이 넘었으나 지난해 763곳으로 30%가량 줄었다. 대부분 개인 산부인과 병원들이다.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적어도 매월 20~30건의 출산이 이뤄져야 하는데 10명도 못 채우는 경우가 수두룩하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운영 중인 병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수지를 맞추지 못해 폐업 위기에 몰려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더 문제는 산부인과 전공을 희망하는 의사가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매년 250명을 유지하던 산부인과 전문의 정원이 올해는 90명에 불과하다. ‘힘들고 돈 안 되는’ 산부인과 전공 기피 현상은 당분간 해소될 기미도 없다. 설령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도 전부가 분만과 수술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외래 진료만 하거나 아예 여성들의 피부와 미용, 건강관리 컨설팅 등으로 돌리는 경우가 일쑤라고 한다. 그렇다고 젊은 의사들의 사명감 부족 탓만 할 수도 없다.

출산 인프라의 붕괴는 국가적 재앙이다. 재앙을 피하는 길은 전문 의료인력 수급과 지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의료 취약지역 광역자치단체가 학부 시절부터 산부인과 전공의를 지원 육성해 자격 취득 후 해당 지역 공공 의료기관에 종사토록 하는 일본의 경우는 좋은 참고 사례다. 특히 기초단체들은 다른 예산을 아껴서라도 분만 산부인과 개설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전남 강진군은 눈물겨운 노력 끝에 정부 지원까지 받아 군 의료원에 분만센터를 여는 성과를 올렸다. 격려금을 주며 출산을 독려하는 것보다 출산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는 게 더 효율적인 저출산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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