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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프로야구 감독 수난시대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도 원칙과 질서는 있다. 구단은 선수와 감독을 자본의 소유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자본의 논리로 모든 걸 재단하려 들면 결국 팬들은 떠난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블루팡스 신치용 감독은 프로 스포츠 최장수 현역 감독이다. 팀이 창단된 1995년 초대 감독에 취임한 뒤 17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프로 스포츠 감독들이 두 시즌을 채우기도 힘든 현실에서 거의 ‘천연기념물’적 존재다. 그는 실업배구 시절 8차례, 프로리그 6차례 등 모두 14회의 시즌 우승을 일궈냈다. 김응룡 전 해태타이거스(현 기아) 감독은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는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부터 2000년까지 무려 18년간 선수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성적도 당연히 좋아 재임 중 9차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두 감독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좋은 성적 때문일까. 물론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구단이 감독을 신임하고 긴 안목으로 전권을 맡기니 자연스레 성적이 좋아진 것이다. 또 성적이 좋으니 구단은 감독을 더 신뢰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한 감독이 팀을 오래 이끌면 특유의 색깔이 나타난다. 가령 신 감독의 컬러는 ‘끈끈한 조직력의 배구’다. 팬들은 그런 삼성의 배구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김응룡 전 감독은 ‘코끼리’라는 자신의 별명처럼 호쾌한 공격 야구를 즐겼다. 그런 김응룡식 야구는 초기 프로야구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프로야구 감독들이 연일 수난이다. 파리 목숨이 따로 없다. 지난달 한대화 한화 이글스 감독이 ‘느닷없이’ 사퇴한 데 이어 며칠 전에는 김시진 넥센 히어로스 감독이 ‘갑작스레’ 경질됐다. 임기는 그야말로 휴지에 불과했다. 이들 두 팀은 하위권에 처져 포스트 시즌 진출이 사실상 무산된 공통점이 있다. 왜 할 말이 없었겠냐만 두 감독은 이전 다른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소리 없이 짐을 꾸렸다.

아무리 냉혹한 프로 세계라지만 그 속에도 나름의 질서와 원칙이 있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팬이다. 팬은 프로 스포츠의 중심이자 절대 주인공이다. 그러기에 구단은 내 돈 들여 영입한 선수와 감독이라고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자본이 선수와 감독을 지배하려 들면 그 순간 팬들은 떠난다.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구단이 아니라 야구 그 자체다. 그 점을 결코 망각해선 안 된다.

최소한 감독 임기를 보장하고, 특히 정규 시즌 도중 감독을 해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독 자신은 물론 팬들과 야구에 대한 모독이다. 모든 구단과 감독, 그리고 선수는 마지막 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프로이고 그런 감동을 만나기 위해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과 질서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프로야구계에선 실종됐다. 감독은 팬보다는 구단 고위층의 눈치부터 살피는 신세가 됐다. 하긴 그게 싫다면 지난해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처럼 잘리거나 스스로 떠나야 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해군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남자로 태어나 꼭 해보고 싶은 세 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한 자리다. 이젠 그런 소리 듣기도 민망하게 됐다. 자본 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구단의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 감독들 스스로도 위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문해볼 일이다. 감독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구를 살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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