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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화균> 출장가방 챙기는 기업인들
출장 배경 중에는 국정감사 공포증도 깔려 있다. 해외출장으로 아예 국감 소환을 피해가려는 심산인 것이다. 기업들의 불만 수위도 장난이 아니다. 내놓고 반발하진 못하지만,  사석에서는 울분을 토로한다.


매년 10월이면 재계 담당 기자들은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의 동정에 귀를 쫑긋한다. 최대 관심사는 이들의 해외출장 여부다. 유독 10월이면 기업인들의 해외출장이 잦기 때문이다. 해외시장 개척, 신사업 구상, 파트너십 구축 등 출장 목적을 묻는 질문에 기업들이 내세우는 사유는 그럴듯하다. 그리고 “극히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라고 밑줄을 그어 설명한다. 그러나 출장 배경 중에는 국정감사 공포증도 깔려 있다. 해외출장으로 아예 국감 소환을 피해가려는 심산인 것이다.

기업인들에 대한 증인 채택은 올해 특히 심하다. 경제민주화 등이 대통령 선거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증인 채택이 잇따른다. 27일 현재 기획재정위, 환경노동위 등 국회 4개 상임위에서 기업인 61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다른 상임위에서도 상당수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거론되고 있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는 국감을 앞두고 벌써 기업인들이 출장 가방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증인 채택이 확정된 A사 대표는 ‘해외시장 점검’을 이유로 해외출장계획서를 마련 중이다. B사의 경우 당초 10월 말로 예정됐던 해외 파트너십 체결을 앞당기기로 했다. C사 한 임원은 “얼마 전 윗선에서 해외출장 계획을 서둘러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급하게 일정을 만들기 위해 해외로 전화를 돌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의 불만 수위도 장난이 아니다. 내놓고 반발하진 못하지만, 사석에서는 울분을 토로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국회가 부르면 기업인은 당당히 나가야 한다. 해외출장 등을 핑계로 서면답변을 보내거나 부하 임원을 대리 출석시키는 것은 ‘꼼수’다. 더 큰 문제는 남발하는 증인 채택과 기업인을 공개 망신 주는 분풀이식 질문 행태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사실 실무 임원급이 나가도 될 사안인데도 CEO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오라면 와야지, 당신이 뭔데’라는 고압적 자세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른 고위인사는 “국회의원들이 기업인 증인을 앞에 세워두고 범죄인 취급을 하며 닦달하는 풍경이 없어지지 않는 한 기업인들의 국감장 회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만나는 기업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누가 당선될 것 같으냐다. 그러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결론은 이렇게 귀결된다. ‘누가 당선돼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냉소주의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기업인들에게 총수 옥죄기로 비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누가 당선돼도 ‘고난의 행군’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벼랑 끝 줄타기를 하고 있다.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 사태가 말해주듯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도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이 시대정신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기업인과 기업의 동참이 절실하다. 기업인들이 ‘경제민주화=기업 옥죄기’라는 등식을 깨고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기업인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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