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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중남미에 부는 포퓰리즘 좌파정권 바람-김대우 국제팀장
사람들은 대체로 남미는 원래부터 못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르헨티나가 2차 대전 전후한 시기에 세계 5대강국 중 하나로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잘 나가던’ 시절 지은 화려한 유럽식 건축물이 많아 ‘남미의 파리’로 불렸다. 중남미 국가들은 자원부국이다. 브라질은 아마존의 열대우림, 철광석, 설탕, 옥수수 등에서 세계 1~2위를 다툰다. ‘신은 브라질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이며, 칠레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철광석 외에 세계 최대의 구리, 몰리브덴, 요오드 생산량을 자랑한다. 페루 역시 구리, 아연 등 광물자원 부존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이렇게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며 승승장구할 것 같던 나라들이 도대체 왜 불과 반세기만에 후진국으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의견은 분분하다. 라틴계 특유의 국민성이나 외세의 개입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쿠데타로 점철된 정치적 혼란과 무능·부패한 정부, 만연한 ‘포퓰리즘’이 가장 주된 원인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중남미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후안 페론과 ‘페론주의(Peronism)’다. 페론은 포퓰리즘의 원조다. 애절한 뮤지컬 ‘에비타’로 유명한 그의 두 번째 아내이자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빈민층에게 ‘성녀(聖女)’로 칭송받았다. 페론집권기 전후의 극심한 분배위주 정책은 ‘분배’라기보다는 민심을 얻기위해 국민들에게 무조건 ‘퍼주는’ 정책에 다름 아니었고, ‘페론주의’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 남발하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후 남미에서 페론주의의 망령은 페론 축출로 사라지지 않았다. 고소득과 각종 복지정책에 한번 맛을 들인 국민들은 인플레가 수천 퍼센트에 이른 상태에서 고육지책으로 실시되는 긴축정책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미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마비되었고, 정부의 후원아래 내수용 물품을 생산하게 된 기업가들은 정경유착이라는 간편한 수단을 배워나갔다. 국민들은 정부가 외채를 빌려 국가기간시설이나 생산설비의 확충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파티’를 베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이렇게 끌어 쓴 외채는 또한 집권자들이 부정축재하기 좋은 계기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는 남미의 다른 나라들로도 ‘수출’되었다. 이른바 ‘남미병’이라 불리게 된 이러한 현상은 라틴족의 민족성 때문이 아니라 포퓰리즘이 낳은 병폐였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하면서 남미에 재차 좌파정권 바람이 불고 있다. 차베스의 승리는 내년 2월 에콰도르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하는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청신호로 간주될 것으로 보인다. 14년 동안 빈민층 지원에 전력을 쏟아온 차베스의 좌파적 포퓰리즘 정책이 국민에게 성공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차베스 따라하기’에 나선 모랄레스로서는 차베스의 후광을 업으며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남미 좌파정권은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집권때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칠레의 라고스 정권, 브라질의 룰라 노동자당 정권,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페론당 정권, 우루과이 좌파연합 광역전선(Frente Amplio),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카와 쿠바의 카스트로 등 중남미 좌파정권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남미에서 자취를 감춘 좌파정부가 최근 잇달아 들어서고 있는 것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깊은 반감이 작용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잇단 좌파정부 출현은 이런 국민정서에 토대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남미의 좌파바람이 과거 포퓰리즘의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하려는 것은 아닌지, 남미의 좌파 바람이 이제 움트려는 남미 경제성장의 싹을 다시 짓밟지나 않을지 우려스런 눈으로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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