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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Insight - 박민준> 인도, 주가드 정신으로 경제위기 돌파?
심화되는 재정적자와 루피화 절하 상황 때문에 S&P와 같은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경고를 받은 상황에서 인도 정부는 개혁ㆍ개방 정책의 발표를 통해 상황을 절묘하게 반전시킬 카드를 펼쳐 보인 것이다.



첸나이는 인도에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도시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18일부터 하루 두 시간씩 강제 정전이 시행되고 있다. 기존에 하루 한 시간이던 계획정전이 전력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두 시간으로 늘어났다. 10월 18일에는 ‘계획정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무런 사전 고지도 없이 사무실과 상가 그리고 주택에 전력공급이 중단됐다. 코트라 첸나이무역관에도 오후 4시부터 갑작스럽게 전기가 끊어졌다. 하지만 인도 직원들은 블라인드를 젖혀서 실내채광을 높이고 유사시 공급되는 비상전력을 이용해 컴퓨터를 가동하고 비상등을 켜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인도에서는 주가드(jugaad)라고 한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심화, 인플레이션, 루피화 절하, 고금리 등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인 인도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신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인도 정부는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발표했다. 경유ㆍLPG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고, 그간 논란이 되었던 소매유통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허용했다. 그간 서민들과 야당의 거센 반대 때문에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던 정책이었지만, 이번에는 연정 파트너인 TMC의 연정탈퇴도 불사하고 추진한 것이다.

심화되는 재정적자와 루피화 절하 상황 때문에 S&P와 같은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경고를 받은 상황에서 인도 정부는 개혁ㆍ개방 정책의 발표를 통해 상황을 절묘하게 반전시킬 카드를 펼쳐 보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은 조세 소급적용에 대해서도 철회 의사를 밝히고 항공, 전력거래, 방송, 보험, 연금 등의 분야에서 외국인투자 한도를 늘리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내용을 다수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발표만으로는 인도 경제를 고성장 궤도에 재진입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인도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중앙정부의 실행력에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소매업 개방과 같은 정책 역시 주 정부의 협력이 없으면 실행되기 어려운데, 이미 많은 주 정부에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개혁 추진이 미진한 것도 문제다. 노동법, 회사법 등에 대한 개혁이 미진하고 공기업 매각 역시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개혁의 추진이 어려운 것은 중앙정부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도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의 6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에 대한 여러 선심성 예산을 거둬들이기 어렵고, 소매산업의 점포규모가 90% 이상 구멍가게 수준인 상황에서 소매업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2014년에 총선이 예정돼 있어 내년도 선심성 예산의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인도 경제는 9년 내 가장 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지난 1985년과 1991년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주가드 정신을 발휘해서 이를 정면 돌파한 바 있다. 이번에도 인도 정부와 재계가 힘을 합쳐 추가 경기침체 타개책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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