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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박도제> 디테일 필요한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
고용노동부는 연계고용 제도가 대기업의 장애인 직접채용 의지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은 다양하지만 최소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다”는 말이 있다. 지하철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생기면서 노약자의 거동이 수월해졌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면서 유모차 이동이 편리해졌다. 그만큼 사회 약자를 배려하는 시설은 비장애인에게도 편리하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사업주를 지원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제도’의 편리성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매우 반가운 소식을 하나 전했다. ‘베어베터’라는 명함이나 소책자를 만드는 인쇄ㆍ제본 전문업체가 지적ㆍ자폐성 장애인 3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공단 관계자는 “20년 정도의 공단 생활에서 이렇게 많은 중증 장애인 인력 신청서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 회사의 장애인 채용 결정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했다.

전체 직원의 90%가 장애인인 회사가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자폐 아이를 두고 있는 이진희 대표와, 다방면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정호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장애인 중심의 회사를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먼저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지정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투자상황이나 이 회사가 진짜 장애인을 고용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업모델 같은 게 아니라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아파트형 공장으로 입주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직원들의 거주지를 감안할 때 강남 지역에 사무실을 두는 것이 편리했지만, 장애인편의시설 기준을 충족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대표는 “현재의 장애인편의시설기준은 휠체어와 시각장애인에 맞게 정해져 있다”며, “이동에 큰 어려움이 없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는 최근 2년 이내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면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춘 건물을 찾을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연계고용이 활발하지 못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재 장애인표준사업장제도 중에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불가피하게 달성하지 못할 경우 연계고용을 통해 장애인 고용 의무부담금 일부를 면제받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장애인 고용을 많이 하고 있는 장애인표준사업장에는 상당한 기회가 되지만, 연계고용으로 의무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비율이 50%로 한정돼 있어 효과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 비율을 높일 경우 장애인표준사업장이 늘어나 결국 장애인 고용이 활성화될 것으로 현장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연계고용 제도가 대기업의 장애인 직접채용 의지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제도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은 다양하다. 직진할 수도 있고 우회할 수도 있다. 빨리 갈 수도 있고 단계적으로 갈 수도 있다. 최소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될 것이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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