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물류대란에 이어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까지 겹쳐 식용유, 밀가루 등 식자재 가격이 급등세다. 지난달 국내 수입 팜유의 가격은 t당 1400달러 선을 처음으로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년 전과 비교하면 가격이 약 2배로 뛰었다.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예정대로 28일부터 식용유와 식용유 원료 물질 수출을 금지하게 되면 팜유 가격은 더 뛸 것이다. 이로 인한 식자재 가격 폭등은 당장 동네 분식점, 치킨집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떡볶이·튀김 1만원어치를 팔아도 원재료비·배달비를 빼면 손해”, “지옥같던 코로나를 2년 넘게 버텼는데 이제 인플레로 폐업할 판”이라는 하소연이 들끓는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취임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모두 걱정되지만 물가가 더 우려스럽다”고 한 것도 물가가 ‘발등의 불’임을 환기시킨다. 한은은 이날 국내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고 노동시장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IMF도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을 4.0%로 전망해 아시아 선진 8개국 평균인 2.4%보다 1.6%포인트 높게 잡았다. 일본 대만 호주 싱가포르 홍콩 뉴질랜드가 비교 대상국인데 한국보다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높은 나라는 뉴질랜드(5.9%)뿐이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로 8개국 평균(2.8%)보다 낮다. 다음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와 저성장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은 것이다.
10년여 만에 4%대로 치솟은 지난달 소비자물가를 두고 미국(8.5%)의 절반도 안 되고 독일(7.3%), 영국(7%)보다도 훨씬 낮아 아직 여유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가(自家) 주거비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우리만의 산정방식이 빚은 착시다. 집값 상승 폭은 물론이고 집을 소유하면서 발생하는 대출 이자, 재산세, 관리비 등의 비용도 빠져있다. 이러니 “체감 물가는 살인적인데 명목물가는 한가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고물가로 서민의 밥상이 초라해지고, 자영업자의 생계가 막막해지면 그 원인이 원유·곡물 파동 같은 외생 변수라 할지라도 유권자의 화살은 정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으로 연계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급중심 정책을 펴야 한다.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지원하되 기존 재정지출을 구조조정해 유동성 확대를 최대한 억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