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경제의 이슈 두 가지가 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해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엔화 가치와 세계 1위 정밀모터업체 일본전산 창업자의 전격 복귀다. 이 두 가지 이슈의 밑바닥에는 일본이 처한 현실과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는 일본식 스타일이 깔려 있다.
엔화는 지난해 초 달러당 103엔에서 이달 중순 130엔 선까지 추락했다. 엔화 약세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경제력’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방증이다. 올해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긴축으로 대전환하는데도 일본만 금융 완화를 고집하는 것도 원인이다. 지난달 28일 일본은행(BOJ)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현행 통화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일본 정책담당자들은 여전히 ‘물가 안정’보다 ‘경기 회복’에 우선순위를 둔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취임 이후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하고, 통화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1990~2000년대 ‘엔고(엔화 강세)’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는 쓰라린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년 4월 그가 물러날 때까지 금융 완화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엔화가 달러당 150엔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나가모리 일본전산 회장(78) 사례도 전형적인 ‘일본식 경영’ 사례다. 그는 1973년 교토의 허름한 공장에서 동료 3명과 일본전산을 창업해 세계 1위 정밀모터업체로 키웠다. 스마트폰, 전기차, 로봇 등 거의 모든 구동 제품에 들어가는 초정밀 모터를 만든다. 그는 현장기술자에서 출발해 일본 부호랭킹 4위에 오를 만큼 부(富)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일본전산의 2021회계연도 매출은 전년보다 18.5% 증가한 1조9181억엔, 영업이익은 7.2% 늘어난 1714억엔으로, 모두 사상 최고치다. 올해도 최고 실적 경신을 예상한다. 그런데도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부리나케 복귀했다.
나가모리 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온 이유로 글로벌 경제 환경이 비상한 위기 상황이고, 회사 주가가 실적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점을 내세웠다. “최고경영자직을 양보한 것이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 며 “일본전산의 본래 모습인 빠른 스피드 체제로 전환해 높은 수익을 다시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회사 출근 후 취한 첫 조치도 산업용 로봇의 부품과 공작기계를 담당하는 사업부를 신설한 것이다.
그의 복귀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이 있다. 유능한 후임 경영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창업자가 다시 CEO를 맡는 낡은 일본식 인사 시스템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일본 재계가 전근대적 카리스마 경영에 의존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일본 대표 제조업체 창업자의 결단을 ‘노욕(老慾)’으로만 치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엔화는 물론 신흥국 통화가 수직 추락 중이다. 글로벌 증시는 연일 급락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은 치솟고 있다. 온갖 풍파를 견뎌낸 78세 창업자가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급히 복귀할 만큼 글로벌 위기 상황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