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전·현직 직원 1300여명이 ‘임금피크제(임피제)’ 도입으로 최대 40%의 임금을 삭감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최근 대법원이 기존 정년을 그대로 두는 정년유지형 임피제가 연령 차별이라고 판단한 것과 달리, 이번 사건은 정년을 늘려준 정년연장형인 만큼 근로자 차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임피제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 혼선에 가닥을 잡아준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T와 KT노동조합은 2014~2015년 단체협약에서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늘리는 대신 임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피제 대상이 된 KT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에도 업무량과 강도가 유지되는 등 합리적 이유 없이 임피제가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KT의 정년연장형 임피제의 경우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업무시간이나 업무 강도가 줄지 않은 점을 지적하지만 정년 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고 했다. 또한 “임피제 도입 전에는 만 58세까지 일하고 연봉의 200%를 받아갔다면 지금은 만 60세까지 연봉 합계 300%를 받아가는 구조”라며 “결국 더 많은 임금 총액이 지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피제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 이후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우려됐다. 노동계는 임피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대법원의 판단을 오독한 것이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사례는 정년을 61세로 그대로 둔 채 임금만 55세부터 삭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55세 이상 직원들의 성과가 51~54세 직원보다 높았는데도 임금에 불이익을 줬으니 부당한 차별이라는 판결이다. 반면 임피제를 적용하되 근로시간을 줄였거나 정년을 연장했다면 유효하다는 2013년 국민건강보험 판례도 있다. 이번 판결은 국민건강보험 판례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근로자에게는 더 오래 일할 기회를, 사용자에게는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는 노사 상생형 임피제는 유효하다는 게 법원의 대체적 판단인 것이다.
정년 60세의 법적 의무화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나면서 임피제의 재설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60% 정도가 아직도 연공서열식 호봉제인 상황에서 정년 추가 연장은 기업의 인건비 급증과 청년 채용 급감이라는 부작용을 부른다. 성과급제, 직무급제 등 임금 체계의 개편과 고용유연성 확대 등 정년 확대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