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경찰국’ 신설을 기어이 밀어붙일 모양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7일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 권고안을 전면 수용하는 경찰통제 강화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행안부에 경찰업무조직(일명 경찰국)을 설치하고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 장관은 이르면 다음달 15일 최종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자문위의 권고를 토대로하는 정부안은 경찰 조직의 근간을 통째로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자문위가 불과 한 달 남짓만에 네 차례 회의를 열어 권고안을 내놓았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사이 여론 수렴 과정은 전혀 없었고,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 현장 경찰의 의견을 듣는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조차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라 할 만한 속도전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즉각 사의를 표명하는 등 일선 경찰의 반발이 거세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경찰 내부망에는 지휘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 ‘경란(警亂)’으로 확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등으로 경찰의 권한과 힘이 ‘공룡’ 소리를 들을 정도로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경찰을 민주적으로 적절히 통제하고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대 사안은 충분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 의도대로 몰아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처리는 그 절차적 정당성과 진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은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심대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1991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옛 내무부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분리 독립했다. 이때 설치된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의 모든 사무를 관장했고, 이를 행안부가 간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유지돼 왔다. 그러나 실질적 통제 기능을 담당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폐지돼 어떤 형태로든 통제 시스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렇다면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 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위헌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시비를 줄일 수 있다. 정해진 각본에 따른 밀어붙이기는 민주적 ‘경찰 통제’ 장치 마련이라 볼 수 없다. 정권의 ‘경찰 장악’이라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 논의를 거칠 시간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