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전기와 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른다. 최근 높아진 물가에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지만 대규모 한전 적자와 급등하는 국제유가에 결국 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이번 발표대로 7~9월분 전기료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5원 인상하면 4인가족 기준 월평균 1535원을 더 내야 한다. 한전은 ㎾h당 33.6원은 올라야 지금까지 오른 연료비를 메울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여섯 번은 더 올려야 한다는 얘기로,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전기나 가스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쓰이는 필수재로, 연쇄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6~8월에 6%대의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배경이다. 결국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비슷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닥칠 우려가 큰 상황이다.
한전이 최악의 상황에 놓인 건 두부값(전기요금)이 콩값(연료비)보다 싼 왜곡된 전기요금 탓이다. 지난 정부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태양광·풍력을 확대하면서도 전기요금을 그대로 뒀다. 임기 전반기엔 무리한 탈원전비용 부담을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국제유가·석탄 가격이 폭등할 땐 선거를 의식해 스스로 만든 연료비연동제까지 애써 무시했다. 고물가에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서민경제가 파탄 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에 따른 손실은 한전에 전가됐다. 지난해 5조8000억원 영업손실을 봤고 올해는 1분기에만 7조8000억원 적자다. 올해 최대 30조원의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번 전기료 인상은 한전 파탄을 막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한전이 파탄지경에 이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탈원전으로 최대 10조원의 비용 증가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국제적 연료비 인상도 무시할 수 없다. 콩값이 비싸지면 두부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100원 들여 생산한 전기를 50원에 파는 구조는 부실을 키울 뿐이다. 전기요금 인상만이 한전 부실의 근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전 정부의 무책임한 가격 인상 회피로 말미암아 현재 소비자가 덤터기를 쓰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적시에 단계적 비용 반영이 필요하다.
차제에 전력 과소비 구조도 돌아봐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주요국 중 3위다. 반면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61% 수준으로 낮았다. 선진국처럼 원가주의에 입각해 전기요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기구에 맡기는 것도 검토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