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율주행기술의 발전은 차량 자동화 레벨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고, 그에 대한 규제 역시 차량을 대상으로, 특히 차량에 장착된 자율주행 시스템(ADS·Automated Driving System)의 안전 규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런데 복잡한 도심에서는 차량 ADS만으로 자율주행이 어렵기에 원격 관제의 도움을 받는 협력 주행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에 대한 규제 패러다임도 ‘차량’에 대한 규제에서 ‘차량·인프라 협력을 통한 자율주행’ 전체에 대한 포괄적 규제 체제로 확장되고 있다. 사고 책임도 차량 운행자나 ADS 개발자의 책임에서 ‘차량+인프라’ 협력 주행 참여자 전체로 책임이 확장되는 동시에 각 참여자의 책임은 제한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해 개정된 독일 도로교통법은 운전자 없는 자율차를 전격 허용하고, 원격에서 ADS와 협력하며 자율운행을 감독하는 ‘기술감독인’ 개념을 도입했다. 올해 영국 법률위원회(Law Commission)는 더 나아가 모든 운전자 없는 자율차에 대해 ADS의 운영을 지원·감독하는 ‘원격운영자’를 의무화할 것을 권고하고 ADS 개발자와 함께 자율운행의 주요 주체임을 선언했다.
새로운 융합 모빌리티 패러다임에서 자율주행차는 간단히 두 가지로 분류된다. ‘운전(준비)자’가 있는 차량과 없는 차량이다. ‘운전준비자’가 있는 차량에서는 ADS가 운전을 담당하고, 비상 상황에 봉착한 경우 제어권 회복 요청을 받은 ‘운전준비자’가 비상상황 대응 운전을 해야 한다. 이런 차에 대해서는 ADS에 대한 안전 규제와 함께 ‘운전준비자’에 대한 규제 역량을 갖추면 된다. 기존의 레벨 3 규제 체제가 이러한 것이다.
문제는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의 등장이다. 자율차의 ADS가 비상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누가 비상상황 대응을 해야 하는가? 차량 외부, 특히 원격에서 비상상황 대응을 하는 방안이 고안됐고, 이러한 자율차에는 ‘원격운영자’라는 새로운 등장인물이 출현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에서는 ADS에 대한 안전 규제뿐만 아니라 원격에서 지원·협력 역할을 하는 ‘원격운영자’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제 자율주행의 방향성은 정해진 듯하다. 복잡한 도심에서는 자율주행차 혼자서가 아니라 원격운영자의 도움을 받는 협력 주행이 현실적 방안으로 굳어지고 있다. ‘ADS와 인프라’가 융합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우리는 글로벌 성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차량과 인프라 기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력 모빌리티 패러다임에 대응해 법제도도 ‘ADS+인프라’ 협력 주행이 야기하는 리스크 전체를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원격 협력 자율주행에 등장하는 복수의 책임주체들의 책임을 어떻게 제한하고, 그 책임에 상응하는 보험제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한 발 앞선 준비를 통해 모빌리티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우리나라 ‘ADS+인프라’ 관련기업이 새로운 자율주행 생태계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이중기 홍익대 로봇윤리와 법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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