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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나토·러시아 협력 종언...강대국 대립시대 국제전략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는 최근 ‘전략개념 2022’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유럽·대서양 지역 동맹의 안보와 평화에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 위협이라고 공식선언했다. 이로써 1990년대 이후 탈냉전시대 지속된 나토와 러시아 간 협력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외교와 군사, 경제 분야에 걸친 전면적 대결의 국면 전개가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2월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공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등 강화를 통해 영향권을 추구하며 도전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 같은 도전에 직면해 통합억제 군사전략 개념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5개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쿼드(Quad)와 오커스(AUKUS) 등을 통해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 파트너들을 연결하는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토의 새로운 전략개념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반영돼 중국이 나토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대해 강압적인 정책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나토의 새로운 전략개념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반발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거나 평화협상에 응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도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을 비판하고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지속하고 있고, 솔로몬 제도를 포함한 남태평양 도서국가들과 안보협력 강화를 추진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마치 냉전시대 초기 연출됐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하에서 핵보유가 인정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간 군사와 외교, 경제 분야에 걸친 대립적 질서가 표면화되고 있다.

강대국들 간 경쟁과 대립이 본격화되는 21세기 국제정세 속 여타 국가들은 복잡한 전략적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동남아국가들과 중동국가들이 형세를 관망하는 가운데 나토와 호주, 일본 등은 동맹 미국과 연대 태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벨라루스와 북한, 그리고 상하이협력기구(SCO) 소속 국가들은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나토 정상회의 참가를 통해 미국 및 나토와 협력하는 태세를 적극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이 지향하는 정체성이나 국가이익 성격에 따라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나토와 협력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피한 외교적 선택으로 생각된다.

다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 증진이나 경제활동 범위 확대에 비춰 예전 냉전시대처럼 동맹국 주도 정책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증진된 국제위상을 활용하고 다자간 국제연대 결성을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의 공세적 대외정책을 완화하는 외교안보정책을 동시에 강구할 필요가 있다. 냉전대립이 치열했던 1970년대 초반,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력증진을 통한 세력균형 유지와 더불어 강대국들 간 상호자제가 국제평화에 긴요하다는 인식을 보이면서 미·중·소 데탕트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강대국들 간 상호자제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지만, 우리 같은 중견국가들이 미국과 동맹을 기축으로 유사한 입장에 서있는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 강화를 통해 러시아나 중국 등 현상변경적 국가들에 대해 전략적 자제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인도네시아 주요 20개국(G20) 회의, 그리고 유엔총회 등이 국제질서 안정을 도모하려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비전과 역할을 제시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강국으로 부상하는 진나라의 팽창적 대외정책을 여타 6개국 간 합종전략으로 봉쇄하려 했던 소진, 미·중·소 대립국면에서 데탕트 정책 추진으로 강대국들 간 무력충돌을 회피하려했던 키신저 같은 외교전략가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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