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시작된 기록적 폭우와 관련해 사흘 만에 사과한 것은 가뜩이나 최악인 국정수행 지지율 속에서 터져 나온 ‘재택근무’ 논란이 크지만 서울 신림동 반지하 일가족 3명의 참변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0대 엄마와 초등학교 6학년 딸, 장애를 가진 엄마의 언니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4시간여 전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에게 건강한 귀가를 기도하는 손녀의 문자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윤 대통령은 할머니가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연을 들은 뒤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홀로 덩그러니 남은 할머니의 절망감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겠나.
반지하 주택은 호우 때만 되면 참사의 주범이다. 이번에도 서울 사망자 6명 중 4명은 반지하에 거주하던 서민이다. 2020년 기준 전국 32만가구가 지하나 반지하에 산다. 90%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 가구 중엔 백에 여섯이 반지하다. 관악구, 중랑구, 광진구 등 노후 주택단지에 몰려 있다. 집중호우 때마다 참사가 계속되면서 반지하 주택 건축을 금지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로 대(對)국민 안전문자가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무슨 영문인지 이번 폭우에는 상습 침수 반지하 주민에 대한 사전 대피 신호 방송이나 문자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환경부·행정안전부·중대재해본부 그리고 서울시의 무사안일이 반복되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서울시는 10일 주거 목적의 반지하 건축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반지하는 리모델링비 지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2010년 광화문·강남 침수,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등을 겪으며 2012년 건축법 제11조에 상습 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건축 불허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이후로도 4만가구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건설됐다. 서울의 극심한 주택난 속에서 가격이 싸고 도심에 위치한 반지하는 서민의 어쩔 수 없는 대안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수요에 충족하려면 반지하 주택이 많은 노후 빌라지역을 고층 주거시설로 개발해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도심 주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반지하는 과거에 햇볕이 들지 않고 환기가 안 되며 곰팡이가 피는 열악한 환경이 문제였지만 기후변화발 물난리가 잦아지는 현재엔 건강을 넘어 생명권이 위협받는 공간이 됐다. 국민의 안전에 무한책임이 있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이번엔 근본대책이 세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