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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만사(晩事)는 망사(亡事)

두고두고 아쉽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얘기다. 장점도 많았는데 비난만 난무한다.

취임 초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은 단연 윤 대통령이다. 그 전 대통령들도 다 그랬다. 대통령 처음 해본다지만 단임제에선 누구나 초보다. 그러니 자화자찬식 성과 나열의 모두발언은 탓할 게 아니다. 굵직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전조율도 A4 용지나 프롬프터도 없는 기자회견은 신선했다. 불편하고 껄끄러운 질문에 나온 마이웨이식 답변도 그럴 수 있다. 가장 자유롭다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그런 경우는 다반사다. 노 코멘트나 전략적 모호함은 외교뿐 아니라 기자간담회에서도 윤활유와 같다. 추가 질문까지 가능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한정된 시간을 고려하면 이른감이 없지 않다. 유머가 섞인 질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한반도 비핵화와 노동개혁 부산엑스포 유치 문제에 대한 답변은 명쾌하고 단호해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어스테핑과 관련해선 표정부터 달랐다. 집무실의 용산 이전과 함께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으로 시작한 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한껏 배어나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니 미흡해도 이해하고 도와달라”는 마무리도 그럴듯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인사쇄신과 관련한 내용이다. “다시 되돌아보고 철저히 챙기고 검증하겠다”는 데까지는 괜찮았다. 대놓고 사과한 건 아니지만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잘해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인사쇄신은 국민과 국정운영을 위한 것이지, 정치의 국면전환이나 지지율 반등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는 데엔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심지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선 아연실색할 정도다. 고집의 기미가 역력해서다.

민심과 지지율은 같은 말이다. 선거 때가 아니니 대통령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가 곧 지지율이다. 그걸 얻고 높이려는 게 정치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신을 뽑아준 이 중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그건 변화하라는 요구다. 일종의 명령이다. 따르면 된다. 굳이 다른 해석이 필요치 않다. 게다가 이보다 급한 일은 없다. 국정운영의 동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이 되도록 교육·복지부 장관이 공석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아직이다. 한기정 교수가 18일 지명됐지만 집무를 시작하려면 갈 갈이 멀다. 중앙 부처 차관급도 20% 가까이 비어 있다. 후임자가 없어 계속 임무 중인 기한 만료 고위직도 부지기수다. 모두 부적격자 내정의 후유증이다. 경제, 코로나 비상시국에 이럴 수는 없다.

엄격한 인사청문회, 야당의 발목잡기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미 국민의 눈높이도 그 수준이다. 사전 검증 단계에서 고사하는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그래 봐야 내 사람, 아는 사람만 쓰겠다는 변명으로만 들린다.

전 정부 사람이라도 정치색 없는 관료라면 골라쓰고 정적이라도 정책의 결이 같으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부 승진도 고려하자. 그럼 인사 풀도 넓어지고 소통과 통합의 이미지까지 얻는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지만 만사(晩事)는 망사(亡事)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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