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경호처가 22일 0시부터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한 경호구역을 자택 울타리로부터로 최장 300m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5월 문 전 대통령 퇴임 이래 사저 인근에서 극우단체가 매일 확성기로 원색적인 욕설·저주를 내뱉으며 집회를 하면서 애꿎은 마을주민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소음 스트레스로 식욕부진, 불면증을 호소하는 주민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최근엔 한 60대 남성이 문 전 대통령 부부에게 다가가 협박성 발언을 한 데 이어 다음날엔 흉기로 비서진을 위협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의 시위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명백한 폭력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은 아닐지 몰라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집단 린치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다.
이번 사안은 야권의 계속된 요구를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수용한 것이어서 닫혔던 협치의 문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문 대통령 사저 경호 강화는 지난 19일 국회의장단과의 만찬에서 김진표 의장이 “시위가 점점 과격화하면서 잘못하면 정치적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고, 윤 대통령은 “위해 시도는 있어선 안 될 일”이라며 경호처 차장을 현장에 내려보내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에서 비롯됐다. 윤 대통령이 두 달 전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고 한 것에 비춰보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민심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다짐했던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협치와 국민통합은 진영을 넘어선 합당한 조치가 하나 둘 쌓여가면서 구현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5·10 취임사와 8·15 경축사 그리고 취임 100일 모두발언에서도 협치를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법인세·종부세 등 온갖 감세정책과 주택 270만호 공급대책, 교육·연금·노동 등 3개 개혁과제, 재정건전화 방안 등은 의회 권력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국정동력을 살려 나가려면 진정성 있는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다.
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만찬에선 여야 5선 의원 6명씩이 참석하는 중진협의체 구성에 대해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윤 대통령의 취임초 국정수행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낮은 것은 야권의 합리적 비판마저 정치 공세로 치부하고 ‘마이웨이’로 치달은 독단도 한몫한다. 여야 중진협의체가 협치의 문을 넓히는 돌파구로 작용해 생산적 국정이 펼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