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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유로화 패리티 붕괴…유럽發 경제위기 오나
1유로 가치,1달러 하회…20년만
英 300년래 최악, 獨 역성장 우려
경제구조 韓과 닮아, 換·증시 동행
글로벌 화두, 공급교란→수요위축
이상기후 중앙銀 긴축완화 걸림돌

유럽 발(發) 경제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유로화는 20년 만에 달러화 가치를 밑돌기 시작했다. 물가 폭등에 가뭄과 폭염으로 에너지와 생산 대란이 겹치면서 경제활동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올 겨울 주난방 연료인 천연가스 대란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양상이다. 원화와 코스피는 유로화, 유로스톡스와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도 비상체제에 돌입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환율은 통화발행 주체의 펀더멘털에 따라 움직인다. 유로화 약세는 유럽 경제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미국의 긴축은 달러 강세를 유발했고 유로화의 상대적 약세로 이어졌다. 유로화 가치를 방어하려면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유로존은 미국 보다 경제 펀더멘털이 약하다. 특히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이 취약하다. 금리를 올리면 국채 이자부담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빚 더 미에 짓눌릴 수 있다. 경제가 금리상승을 버텨내려면 소비와 생산이 늘어나 경기가 나아져야 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와 유로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서 소비가 위축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은 생산 효율을 떨어뜨렸다. 가뭄과 폭염 같은 이상기후는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미 영국은 18세기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이란 진단이 나올 정도이고,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도 올해 역(逆) 성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로화는 비(非) 달러 통화의 대명사다. 원화의 움직임도 유로화와 비슷하다. 유럽 증시는 수출과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비중이 높다. 코스피와 유로스톡스가 유사한 궤적을 그리는 이유다. 중국 경제와 관련이 깊은 점까지 닮았다. 유럽연합(EU)은 아세안에 이어 중국의 2대 교역지역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개별국가 기준으로 일본을 넘어 중국의 2대 교역국이 됐다. 관세청 통계를 보면 이달 1~20일 무역수지는 102억 달러 적자다. 우리나라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에서 최근 4개월 연속 적자다. EU도 중국에 무역적자를 기록 중이다. 무역 적자는 달러 공급을 줄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를 높이면서 인플레이션이 커진다.

우리나라와 EU 모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다. 북해 유전을 가진 유럽이지만 에너지 소비가 워낙 많아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경유가 없으면 살 수 없다.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줄이면 중동이나 미국 등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조달해야 한다.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도 높은데 공급도 부족이다. 미국이 원유 증산 계획을 밝혔지만 자국내 가격 안정이 우선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현재의 고유가를 충분히 활용해 나라 곳간을 채우려 증산에 소극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증산 계획에 맞서 감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에너지 시장에서 국제 공조와 협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유럽과 중동에서 에너지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유럽은 올 겨울 에너지 배급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배급제가 시행될 정도면 경제가 꽁꽁 얼어붙을 게 뻔하다.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올릴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긴축에 돌입했고, 유로존 보다 재정건전성이 나은 점을 감안하면 원화 가치가 유로화처럼 폭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고 환율이 단기간에 하향 안정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투자자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노골적으로 긴축 속도조절을 표방하기에는 원자재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가뭄과 폭염의 타격은 식량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에까지 미친다. 겨울에 화석연료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달러 강세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인플레이션에 가장 효율적으로 맞설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다.

이제 증시는 공급차질에 더해 수요 둔화의 국면에 대비해야 할 때다. 공급 차질만 문제일 때는 그나마 높은 값에 사줄 수요가 있는 것이지만, 수요 둔화는 물건을 팔 곳이 아예 없어진다는 뜻이다. 최근 기업들의 재고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그 반증이다. 환율과 마찬가지로 우리 증시도 가격수준이 이미 낮아져 급락할 위험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의미 있는 반등을 하기도 역시 어려울 듯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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