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75주년을 맞이한 파키스탄에 올해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대홍수와 폭염, 외화 부족에 따른 디폴트 경제위기, 헌정사상 최초 현직 총리 탄핵 등 이슈도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외부에 알려지는 이런 이슈들이 모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인구 5위 대국이자 영어를 공용어로 구사하며 풍부한 젊은 노동력을 갖춘 서남아의 맹주 파키스탄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은 정치적 불안정과 가난과 빈곤의 이미지에 덧칠해져 묻혀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의 격랑을 한꺼풀 걷어내면 변화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파키스탄은 전통적 의미의 농업국가이다. 경제활동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축산업이 전체 국가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
지난 5년간 파키스탄 정부의 강력한 제조업 부흥 및 산업전환 정책으로 산업구조에 지각변동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내년 예산안에 농축산물과 면직물에 편중된 기존 수출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산업 다각화의 고민이 담겨 있다.
한 예로 AI, 로봇, 게임, 의료기기, 휴대전화, 컴퓨터 가전 및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 2000만달러의 예산이 배정됐다. 또 수출 제조업체를 위한 특별경제구역이 확대되고, 전력인프라 등 실질적 지원도 늘어났다.
이밖에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향후 5년간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관련 기자재 수입 관세와 판매세 등 각종 세금이 면제되고 태양광 패널의 판매세도 사라지게 된다. IMF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재정적자는 2025년까지 7.9%에서 3.6%로 줄이되 인프라, 과학기술, IT, 지역개발 등 공공개발 지출은 17% 늘어나게 된다.
주목할 것은 지난 5년간 파키스탄 정부가 중점 추진해온 제조업 육성정책이다. 정책추진 후 20여개의 글로벌 완성차 제조공장 설립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현대기아차도 남부 카라치에서 생산을 개시했다.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차체 외관 등 부품의 현지화를 확대하고 엔진 등 핵심부품은 수입함으로써 파키스탄과 외투기업 모두 윈윈(win-win)하는 제조방식인 셈이다. 냉장고와 에어컨 등 가전산업 역시 2018년부터 투자를 확대해 부품 현지화 비율이 50%를 넘어섰으며 이제는 내수시장을 넘어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인접국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연초에 발표된 수출제조 분야 중장기 육성전략(2020~2025)에도 이런 의지가 담겨 있다. 기존 면직물 위주의 제조업을 의약, 화학, 가공식품 등으로 다변화하고, 연구개발(R&D) 우위의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가치사슬의 다운스트림 분야에서 부지 등 인프라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참여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글로벌 밸류체인과 생산기지의 재편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흐름 속에서 젊은 노동력을 풍부하게 보유한 파키스탄이 차세대 글로벌 제조업 생산기지로 부상하려는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여 기회를 선점해야 할 때다.
민준호 코트라 카라치무역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