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 한 사회에서 인문학이 쇠락하면 문화의 저력도 사라진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없는 듯 보인다. 방탄소년단(BTS)이 군대 가는 것까지 정부와 국회가 관심을 가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 국격와 문화의 품격을 이른바 ‘K-대중문화’에 의존한 지는 벌써 오래다. 독일의 한 한국학 전문가는 유럽에 알리는 한국문화는 대중문화밖에 없는 듯 보인다고도 말한다. K-대중문화의 붐이 긍정적이라도 우리 문화가 어찌 대중문화만 있겠나. 또 그것이 과연 우리 문화를 대표할 수 있을까.
외국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작업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역동성, 전통성과 개방성, 본질과 외연을 동시에 알려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경제적 성공뿐 아니라 문화적 저력과 확장성을 갖춘 국가임을 인식시킬 수 있다. 역으로 이 작업은 우리의 무형적 역량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비전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문화를 알리는 일은 그 자체로 외교전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외교가 안보, 경제, 기술과 공조하는 시대 상황에서 타국 문화의 인정은 공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가 이런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문화의 본질과 확장성을 파악하게 만들고 그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국가의 인문학의 현재를 보면 그 국가의 문화의 미래가 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인문학은 고사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붐처럼 일어났던 교양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이미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물질적 성공법, 처세술 등 실용 잡학(雜學)에 대한 관심이 들어섰다. 그 이유가 뭘까.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으로서 인문학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학문으로서 인문학은 학문 일반의 논리, 근거, 내용, 범위를 알려준다. 나아가 지식과 산업의 융합, 인간과 사회의 환류, 생명과 자연의 순환에 대한 방향성을 제공하고,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공정의 양립의 정당성과 실천의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즉 인문학은 다양한 사회정책, 기업의 생산과 판매 전략, 개인적 삶의 설계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실천력을 가진다. 개인, 기업, 사회에서 인문학적 지식과 식견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인문학은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학문으로 치부된다. 대학이 이미 단기적 취업과 근시안적 인력 수급시장이 됐고, 정부도 그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인력의 양산 주문은 그 대표적 사례다. 반도체 인력의 양성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대학이 급조할 수는 없다. 시대 상황은 그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산업의 지형도는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늘 실패한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학들은 혁신이란 이름으로 급조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상 단기 인력 시장으로 변모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학정책에서는 국가와 산업의 미래가 없다. 대학시장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이 모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징후가 된다. 정부는 이런 맥락과 대학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히 응답하기 바란다.
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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