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예산안 처리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물 건너 갈 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장관의 해임 건의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다음주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안 모두 국회 재적 과반이 의결정족수라 169석의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합의한 마당에 핵심 증인인 이 장관 해임 건의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해임건의안은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고,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검사 역할을 하는 데다 요건상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문제는 이 장관 거취 문제로 여야 대치가 격화되면서 새해예산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협상 시한(11월 30일)이 불발됐고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결위 심사기일을 연장했다. 그러나 여야의 간극이 커 법정시한 내 처리는 물론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 내 처리도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은 예산안 심사에서 대통령실 이전,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설치 등 윤석열 정부 구성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공공임대주택과 지역화폐 예산 등은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표 예산’은 칼질하고 ‘이재명표 예산’은 키우겠다는 민주당에 여당은 “대선 불복”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러다 초유의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나 2023 회계연도 개시일(1월 1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못하고 헌법상 ‘준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준예산 사태가 되면 예전부터 해오던 사업에 대해서만 올해 예산금액에 준해서 지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내년 경기침체 여파로 고통이 가중될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을 위해 생계·의료·주거 급여 등의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준예산으로 가면 이 같은 사업에 쓰이는 재량지출의 대부분이 막힌다. 내년도 예산안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으로 25조1000억원을 편성했는데 관급공사가 멈추면 일용직 일자리도 끊긴다. 연간 고용 규모가 82만2000명에 달하는 노인 일자라도 직격탄을 맞는다.
내년에는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올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재정의 조기 집행을 통한 경기부양이 매우 긴요하다. 여야는 예산안의 시한 내 처리가 민생과 경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자각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