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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월드컵 여정 마친 한국축구, 희망을 쐈다

경기마다 불굴의 투혼을 보이며 한국축구사를 다시 썼던 태극전사의 여정이 8강 문턱에서 멈췄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켜보자며 선수들과 온 국민이 똘똘 뭉쳤지만 세계 최강의 벽은 높았다. 지면 끝장인 토너먼트 경기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만난 우리 선수들은 임전무퇴 정신으로 나섰다. 수비의 핵인 김민재는 “근육이 찢어져도 죽기 살기로 뛰겠다”고 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조별 경기 최종전 포르투갈과 피를 말리는 혈투를 치른 뒤 사흘 만에 경기에 나온 주전 선수들의 체력은 한계에 이른 모습이었다. 반면 3차전 로테이션 덕에 주전 10명이 일주일을 쉬고 나온 브라질은 펄펄 날았다. 엔트리 26명 중 22명이 유럽의 빅리거일 정도로 선수층이 두터운 팀과의 대전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게다가 승운도 따르지 않았다. 전반 초반 2실점이 뼈아팠다. 특히 고의성이 전혀 없었던 플레이에 페널티킥이 주어지면서 사기가 꺾이고 말았다. 후반에 터진 백승호의 통쾌한 중거리슛 득점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됐다.

브라질에 대패하면서 사상 첫 방문 월드컵 8강이 좌절됐지만 우리 선수들이 일군 ‘12년 만의 16강’ 쾌거는 빛이 바래지 않는다. K리그 득점왕 출신 조규성은 가나전에서 국내 선수 최초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새 장을 열었다. 두 골 모두 헤더 득점이어서 한국축구도 유럽의 장신 선수와 맞서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포르투갈전에서 캡틴 손흥민이 3중, 4중의 수비를 뚫고 황희찬에게 연결한 절묘한 패스는 ‘역대 가장 아름다운 어시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경기의 기적 같은 역전드라마는 ‘월드컵 92년사에서 가장 격정적인 조별리그 마감’(로이터통신) 중 하나였다. 실낱같은 희망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이 빚어낸 값진 성과다. 20년 전 월드컵 4강 신화와는 또 다른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안와골절 부상에도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손흥민의 투혼은 온 국민의 열정으로 승화했다.

기적은 언제나 감동적이지만 속성상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브라질전에서도 세계가 깜짝 놀랄 또한 번의 이변을 기대했지만 실감한 것은 엄청난 격차였다. 이제부터는 세계 선진 축구와의 격차를 좁히는 4년을 준비해야 한다. 히딩크의 압박축구, 벤투의 빌드업 축구로 한국축구는 한 걸음씩 진화해 왔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가장 효율적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세트피스와 크로스의 정교함을 높여야 한다. 조규성, 이강인 등 쑥쑥 크는 젊은 피는 희망이다. 해외 빅리거들이 더 많아져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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