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에둘러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얘기다. 이 총재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며 “침체로 가느냐 마느냐의 경계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에두른 표현에도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은 총재의 입에서 ‘경기침체’란 말이 공식 언급된 게 처음이어서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메시지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인플레 파이터’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내년 고물가 지속을 예상하며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못박았다. 특히 기존에 밝힌 기준금리 종착점 3.5%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며, 종착점이 더 멀어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내년 경제정책을 설명했다. “내년 경기 상저하고”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거시경제 운용” 등 한은 총재의 발언과 기조가 유사하다. 다만 경제정책 수장의 위기 의식은 더 절박했다. 그는 “정부는 내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며 “우리나라는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란 단어를 직접 쓴 데다 ‘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사례를 언급해 그 강도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쯤 되면 내년 경기침체는 이제 상수(常數)다. 실제로 사방이 암흑 천지다.
수출은 주력인 반도체(품목)와 중국(지역)에서의 부진으로 2개월 연속 감소에 올해 무역적자는 5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기업들은 재고가 쌓이면서 평균 가동률(매출 500대 기업 중 200개 기업)이 80% 아래로 떨어졌고, 내년 경영목표(경총 조사)도 ‘현상유지’와 ‘긴축’으로 잡았다. 빚 부담이 커질 가계도 걱정이다. 투잡(본업과 부업)을 뛰는 가장(家長) 근로자가 올 1~3분기 36만8000명으로 역대 최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이고, 지난해 중장년(40~64세)의 소득은 전년 대비 5.4%(약 200만원) 늘었는데 빚은 11.6%(약 600만원) 증가해 살림을 압박했다(통계청 2021년 중장년층 행정통계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수도권에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10년간 모아야 한다는 조사(국토부 2021년 주거실태조사)도 있다. 이 기간은 2020년 기준으로는 8년이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숨 넘어가는 경제 주체들을 살릴 키는 국회가 쥐고 있다. 예산안, 반도체법, 법인세·종부세·주식양도세 등 세제, 추가 연장근로 일몰 연장 등 당장 급한 관련 입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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