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민주노총 화물연대는 연말에 도래하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대상 품목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올해 들어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집단 운송 거부 등 파업을 단행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에 대해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선(先)복귀 후(後)대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8일 철강·석유화학업종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자 다음 날 화물연대는 16일 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사실상 빈손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고유가·고금리·고물가 등 ‘3고(高)’ 상황에서 운송 거부로 인한 산업계 피해가 가중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화물연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인한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자동차 등 5대 업종의 출하 차질로 산업계 추산 4조1000억원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노조의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을 발의해 노조의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용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9일 국회 상임위에서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 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안전운임제 일몰을 3년 연장하는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이 민주노총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반면 미국 하원은 지난달 30일 철도 파업을 금지하는 법안을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통과시켜 우리와 너무도 대비된다.
민주노총은 6일 화물연대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연대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일부 노조가 이탈하면서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데 실패, 힘이 빠졌다. 게다가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사실상 정부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동력이 크게 약화돼 왜곡됐던 노사관계가 정상화되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1995년 11월 발족 이후 이번처럼 정부의 원칙적 대응에 밀려 스스로 파업을 철회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철·철도 노조 파업 철회는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이 주효해 가능했다. 그동안 투쟁일변도의 노동운동 노선에 근본적 변화 조짐이 일어나고 있어 지금이 노동개혁을 성사시킬 절호의 기회로 보인다.
현재 우리가 처한 복합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지만 우리의 노동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만만치 않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의 문제점과 인구구조 변화 및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의 변화를 아우르는 매우 복잡한 과제다. 따라서 모든 과제를 한꺼번에 다루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노사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원칙을 확고히 지키는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하고 이것이 노동개혁의 첫 단추다. 강성노조의 힘에 눌렸던 미국과 영국 등이 독일에 앞서 노동개혁에 성공했던 비결은 법치주의부터 확립한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노동개혁 의지를 강하게 밝혔지만 그동안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으로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 최근 정부는 집권 초와 달리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불법 파업 타협 불가’ 원칙 고수로 파업 철회를 이끌어내는 등 노동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향후에도 화물연대의 불법행위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 ‘노사관계에서 불법이 발붙일 곳은 없다’는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제안한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정부 주도로 흔들림 없이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여론도 우호적이므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법치주의’를 확립함으로써 노동개혁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최초의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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