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 경희대 교수 |
유행어라는 말은 언중의 입에 오르내림이 전제가 됩니다. 당연히 많이 사람이 사용해야 유행어가 됩니다. 유행어는 대중매체의 발달과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대중매체가 없던 시절에는 어떤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쉽지 않았고, 유행을 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매체의 발달, 뉴스의 발달은 유행어의 사용을 촉진시켰습니다. 유행어의 생산자는 주로 연예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 났어 정말!’과 같은 유행어는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인상 깊은 대사는 그대로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같은 오글거리는 말도 때로 유행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물론 자주 사용하기는 어려운 표현이었지만 누구나 아는 표현이었던 겁니다.
한편 유행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로 코미디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예능인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유행어 하나가 있으면 마치 가수의 히트곡 같은 역할을 합니다. 평생의 먹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숭구리 당당’으로 한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행어는 그야말로 유행을 타는 것이어서 그 순간이 지나가면 힘을 잃습니다. 예전의 유행어 ‘고뤠?’, ‘히트다 히트!’라는 말을 여전히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쓰면 오히려 욕을 먹기도 합니다.
정치인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행어를 만들려고 노력을 합니다. 예전에는 주로 남들이 덜 쓰는 한자성어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었습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이제 토사구팽은 누구나 알 만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정치인의 유행어도 있습니다. ‘내로남불’이 그것입니다. 뜻은 안 쓰겠습니다. 이런 말이 유행어가 되는 세상이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 중에서 말 꽤나 한다는 사람은 계속 유행어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마도 프레임을 걸어보려는 생각도 있을 겁니다. 고사성어를 쓰기도 하고, 이상한 표현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올해의 유행어에도 그런 표현이 꽤 있습니다.
요즘은 유행어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행어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힘을 얻습니다. 그것을 사회성이라고 합니다. 관심이 없으니 유행이 안 됩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예능도 예전만큼 인기가 없습니다. 당연히 유행이 어렵습니다. 정치인의 말도 왜 유행이 안 되는지 말을 안 해도 알 겁니다. 도대체 관심이 없습니다.
올해에 하마터면 욕이 유행어가 될 뻔했고, 하마터면 다양한 비속어가 유행어가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유행이 안 됩니다. 그저 구설수(口舌數)일 뿐입니다. 유행어의 어두운 측면이 바로 구설수인 겁니다. 그 말 때문에 남의 입에 오르는 운수가 된 겁니다.
혐오의 말, 차별의 말이 툭툭 튀어나와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혹시 자신의 말이 주목을 받아서 유명해 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런 말은 다시 말하지만 유행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입에 올리고 싶지 않고, 사용해서 다른 사람까지 불쾌감을 주는 말이라면 결코 유행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기분 나쁜 말이고, 본인을 갉아먹는 구설수일 뿐입니다.
요즘의 유행어는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일반인이나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유행하기까지의 속도가 빠른 만큼 사라지는 속도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유행어는 세대 간의 은어처럼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서로의 유행어를 세대 간에 서로 모르는 세상이 된 겁니다. 유행어이기는 한데 널리 유행은 하지 못한 겁니다.
저는 유행어를 공부하면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유행하지 않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그런 말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금방 사라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쩌면 희망사항일지 모르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이 유행하였으면 합니다. 그런 말이 널리 유행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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