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미디어마다 올해를 특징짓는 말들이 넘쳐난다. 말은 한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올 한 해 전 세계 사람은 구글에서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관심을 끈 단어는 영어단어 맞추기 게임 ‘워들(Wordle)’이다. 일상은 전쟁보다 게임을 택했다. 이 게임은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기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빠르게 퍼졌는데 미국 NBC ‘투나잇 쇼’의 진행자 지미 펄론이 라이브로 게임을 시도해 성공한 뒤 스튜디오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랜드들도 이에 질세라 이를 적극 활용해 미 국립도서관은 100년 전 크로스워드 퍼즐이 이 게임과 비슷하다며 젊은이들의 방문을 유도하기도 했다.
레딧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시 워들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아내를 위해 개발했다는 게임은 올 초 뉴욕타임스가 인수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로그인이 필요한 만큼 구독자를 늘리는 데에 톡톡히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구글 이용자들은 ‘기후변화’를 가장 많이 검색했고 2위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사고’는 5위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꼽은 ‘고블린 모드(Goblin mode)’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처음 대중 투표로 뽑은 단어로,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고의로 방종하고, 게으르고,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행동 유형’을 가리키는 속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복귀를 거부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유행했다.
지구촌 저편의 말들이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국내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확 와 닿는다. 지도층 인사들이 잘못이 드러나도 남 탓을 하며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많은 교수가 이 단어를 꼽았다.
고단한 한 해를 보낸 범속한 우리도 저마다 올해의 단어 하나씩은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봄, 주옥같은 어록을 남기며 우리에게 한껏 웃음을 선사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명대사 “날 추앙해요”를 꼽고 싶다. 염미정은 말했다. “술 말고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제대로 채워진 적이 없어요.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요.”
추앙이 상대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말이던가? 아주 짧은 순간 멍하게 만든 이 말을 MZ세대는 재빠르게 검색했다. 케케묵은 벽장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추앙은 우리를 빵 터지게 했고, 한동안 ‘추앙해요’놀이를 즐겼다. 우리는 왜 파시즘에 사이비 냄새마저 풍기는 이 생뚱맞은 말에 매료당한 걸까?
주인공 염미정은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은 소통과 사랑의 빈자리, 이해받지 못하는 말들의 커져가는 구멍을 추앙 정도는 돼야 겨우 메울 수 있을 듯했다. 속에서 수 많은 말이 들끓지만 술로 꾸역꾸역 말을 밀어넣고 입을 닫은 채 살아가는 구씨는 처음엔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무언지 몰랐지만 이내 그 마음을 아는 듯하다. 빈정거리거나 얕잡아보지 않고 그 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말은 우리를 새롭게 밀고 나가게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낸 적이 있을까? 북극한파와 경기침체, 조용한 해고 등 그 어느 해보다 추운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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