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현장 노동조합의 갑질과 횡포 등 불법행위를 전수조사(5~13일, 전국 387개 공사현장)해봤더니 82곳에서 270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이 이 정도니, 민간 부문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등 건설 관련단체 7곳이 이달 초부터 13일까지 국토교통부 요청으로 긴급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총 843개 업체가 피해를 신고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조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할 엄두를 못 낸 곳도 많을 텐데 불과 2주 사이 이처럼 피해 사례가 쏟아진 것은 건설 현장의 불법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가장 많았던 피해 유형은 ‘채용 강요’였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경남 창원 명곡지구 행복주택 현장을 찾아와 시공사에 소속 조합원을 목수와 철근공, 콘크리트공, 펌프카 근로자로 채용하고, 팀별로 월 700만~900만원의 인건비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요구가 거절당하자 협상이 결렬됐다며 노조 소속 레미콘 운송사업자에게 명곡지구에 레미콘 납품을 금지하도록 했다. 결국 지난달 16일부터 레미콘 공급이 끊기면서 이달 8일까지 24일간 공사가 중단됐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건설 하도급업체에 월급과 별개의 월례비를 요구하거나 노조원 보유의 굴착기나 크레인 사용을 압박한 사례도 많았다. 노조 전임비 등 터무니없는 명분의 가욋돈을 강요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노조의 막무가내식 떼법과 업무방위 행위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공사와 하도급 업체들은 공기 지연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요구인 줄 알면서도 응해야 했다. 환경법 위반 등 걸면 걸리는 공사 현장의 취약성도 건설노조와 타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을 것이다. 직전 정부의 친노조 편향 탓에 현장의 문제 제기가 묻히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건설 현장 노조의 패악이 관행처럼 굳어져 죄의식 없이 만연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건설 현장의 탈선은 비단 건설사와 노조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노조의 불법행위는 공사 지연, 부실 시공, 건설단가 상승 등으로 이어져 온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실제로 부산의 한 초등학교 신축공사가 노조의 업무 방해와 파업 여파로 정식 개교가 2개월 이상 미뤄지기도 했다. 노동개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법을 관행처럼 여기는 구태부터 단절해야 한다. 국토부가 경찰, 고용노동부, 지자체 합동의 전담팀을 만들었고 공정위도 합세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지만 불법의 토양을 분석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