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시달릴 때는 코로나19만 극복되면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완화됐지만 경제위기는 되레 심화·증폭됐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팬데믹기간 투입한 막대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이란 후폭풍을 낳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유동성을 회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네 차례 연속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고, 한국은행도 뒤따라 금리를 인상했다. 금융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엔데믹 상황에서 한국 경제도 격랑에 휩싸였다. ‘달러 표시 1인당 국민소득(GNI)’이 뒷걸음쳤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에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평균 12.9% 급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GDP 디플레이터를 더하더라도 원화가치 하락폭을 상쇄하지 못한다. 결국 달러표시 1인당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3만5000달러 소득이 깨졌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도 점차 비관적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가 2% 성장할 것으로 봤지만 한 달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은행은 각각 1.8%. 1.7%로 내다봤다. 엔데믹 상황에서 ‘보복 소비’가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았고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침체가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연초부터 맥을 못 추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수출 부진이 더 심화하고, 고금리·고부채와 고물가 속에 내수도 잔뜩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이달 1~10일까지 전년(6.5일)보다 조업일 수가 하루 많았음에도 무역수지는 62억72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적자폭을 키웠다. 내수와 수출이 부진한 복합 위기가 지속되면 올해 한국 경제는 1%대 성장률도 힘겨울 수 있다.
펜데믹 이후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먼저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생경제’를 운운하며 재정 30조원을 투입하자고 한다. 야당 입장에서 추경을 편성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다. 힘겹게 예산안이 통과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추경을 거론하는 것은 정책순리가 아니다. 온 국민을 ‘재정중독’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선동이 아닐 수 없다.
구조개혁을 통해 한국 경제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국은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명실공히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적격 기준으로 준용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진지수에 편입되지 않고 외국투자자의 투자자금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편입을 막는 ‘외환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해 지수 편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국내 6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글로벌 최고경영자 20인 회동에서 “한국을 최고 혁신허브로 만들겠으니 적극적으로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 혁신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한다, ‘거미줄 같은 규제, 다락같이 높은 법인세율, 반기업 정서, 노(勞)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시정하지 않고서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없다.
그중 ‘노사무기대등원칙(equal footing)’이 가장 시급하다. 한국은 파업 때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사실상 허용하면서 대체근로 투입은 금지하고 있다. 반면 주요 선진국은 파업은 허용하되 사업장 점거를 원천봉쇄하고 대체근로는 허용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팬데믹 위험이 사라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경제의 정책 방향은 구조개혁으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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