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각자 헤어질 결심을 다 했고, 이제 헤어지는 일을 시작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으로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반도체 등 경제안보를 논의하던 지난 1일 오전, 같은 시간 SK그룹의 핵심 계열사 SK하이닉스가 10년 만에 적자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영업이익 97% 급감에 이은 양대 반도체기업의 연쇄적인 실적 쇼크였다. 최 회장이 “우리 주요 산업인 반도체나 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경제안보가 부각되고 있고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피력하던 순간 역설적으로 K-반도체 ‘위기론’이 더 부각되고 있었다. 이날 오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열린 SK실트론의 투자협약식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산업은 우리 수출 20%를 담당하는 경제의 버팀목이자 국가안보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도 “반도체·배터리 전략사업에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우리는 최악의 무역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한국 수출의 1등 품목인 반도체 실적이 거의 반 토막이 나면서 1956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무역적자를 냈다. 약속이나 한 듯 대한상의와 한국은행 세미나, SK하이닉스의 실적 발표, 윤 대통령의 SK실트론 방문,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액 발표 모두 한날에 나와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려감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반도체가 한국 산업의 버팀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각국의 자국우선주의 핵심 산업도 반도체다. 신중했던 일본도 48조원을 들여 반도체전쟁에 참전했다. 챗GPT 등으로 AI산업이 또 한 번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이와 관련 데이터센터산업도 한층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돼 이 같은 시장을 받쳐주는 반도체산업 또한 반등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가 반도체 부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가 불황과 호황이 계속되는 ‘사이클산업’이란 점은 기회다. 과거 삼성전자는 2009년 1분기 반도체 적자 이후 2분기 곧바로 흑자로 돌아서며 6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SK하이닉스도 2012년 분기 적자를 이듬해 안정적 흑자로 만회한 뒤 2014년에는 분기마다 1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장 올해 상반기 더 큰 위기가 예상되지만 하반기 이후 반등의 순간까지 ‘인내할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전자 측은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로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현재로선 추가 투자 감축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올해부터 원가경쟁력 제품을 중심으로 고객 수요에 맞춰 제공할 수 있는 투자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대외적인 여건에 대한 개선 기대감도 어느 정도 조성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산업 전망 가늠자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3일 기준 지난 5일 새 6.15% 상승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인플레이션 둔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현재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머지않아 K-반도체가 부활에 성공한 뒤 외칠 ‘세 글자’에 초점이 모인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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