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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문제의 핵심

오세훈 시장의 첫 임기 때 다른 과장과 함께 보고를 들어갔다. 아마 내가 담당했던 교통과 관련된 업무라 2개과에서 같이 보고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다른 과장이 보고를 했다. 한참 동안 듣고 있던 오 시장은 보고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과장은 자신의 말을 꿋꿋이 계속했다. 결국 오 시장이 직접 펜을 들더니 이렇게 저렇게 정리해 달라고 썼다. 시장이 보고하는 과정에서 펜을 직접 들고 쓰는 경우는 고건 시장 이후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보고를 들어갔지만 시장이 펜을 잡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시장의 여러 차례 지적에도 계속 보고하는 과장의 배포는 대단했지만 뒤에서 지켜봐야 했던 나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곁다리만 잡는 보고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켜봐야 하는 사람까지 괴롭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식의 대응이 너무나 많다. 정치적인 이유로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사족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핵심을 벗어난 대응은 결국 해결보다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정부의 부동산대책일 것이다. 이미 과도한 세금 부과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 노무현 정부 시절 실패했던 사례가 있음에도 똑같은 방식의 대응을 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됐고, 결국은 정권교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

나는 미국의 행정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결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 발생 이후 대응 노력을 보면 왜 미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9·11 테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의 핵심 요소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 제도적 대응방안 등을 마련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대응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큰 사고가 발생하거나 지하철 건설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사건 발생이나 정책 추진의 경위부터 원인, 대책들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은 백서를 만들어 사후에 활용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 백서는 잘 만든 보고서일 뿐 다른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는 문제를 회피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보고서가 돼버려 백서의 의미를 반감시킨다. 요즈음은 여기에 더해 가짜 뉴스까지 성행하면서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이 다른 경우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고 그 결과 대책 역시 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나 행정부가 뒤에 숨어 문제를 악화시키는 사례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이라도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대응으로 국민을 답답하게 하거나 짜증이 나게 하는 경우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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