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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브의 에스엠 상륙작전…카카오, 반격 가능할까 [홍길용의 화식열전]
카카오 ‘인수‘ 대신 ‘협력’ 강조
이사회·타주주와 연대에 그쳐
하이브 공개매수로 기선 제압
지분경쟁 정면충돌 어려울 듯

K-팝의 종가 격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싸고 카카오와 하이브의 공방전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철옹성’ CJ ENM을 넘으려는 카카오다. BTS를 앞세워 음악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 중인 하이브다. 엄청난 지적재산권(IP)을 음악계 영향력을 보유한 에스엠이다. 양측 모두 물러나기 쉽지 않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다. 수년간 에스엠에 공을 들인 쪽은 카카오인데 전격전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쪽은 하이브다. 이번 대결을 손자(孫子)의 가르침으로 풀이해봤다.

▶승산을 잘 따진 쪽은=고대 중국에서는 전쟁 전에 묘산(廟算)을 행했다. 종묘에 군신들이 모여 승산을 따지는 절차다. 운을 점쳤던 것은 아니다. ‘산(算) 가지’라는 숫자 계산 도구를 사용해 어느 편에 승산이 있는 지를 하나하나 따져 표시했다. 오늘 날로 따지면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손자병법 시계(始計)편은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적으면 이길 수 없다(多算勝, 少算不勝)”고 했다. 심지어 “승산을 따지는 것만으로도 승패를 알 수 있다(吾以此觀之 勝負見矣)”고 장담할 정도다.

오늘의 에스엠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최대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율이 그리 높지 않고 라이크기획을 통한 이익 유출이 주주들의 반발을 산 결과다. 이 프로듀서는 그동안 꽤 오랫동안 카카오 등과 지분매각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영권 등 그의 이권을 일정부분 이상 보장하는 조건에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최대주주와 일반 주주의 갈등은 경영(이사)진으로 하여금 회사를 팔려는 이 프로듀서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어정쩡했던 카카오, 화끈한 하이브=먼저 포화를 연 쪽은 카카오다. 에스엠 이사회는 지난 7일 사업협력을 명분으로 전환사채(CB)와 제3자배정 증자를 통해 카카오가 지분 9.1%(신주 발행 후)를 확보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 프로듀서 지분율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국민연금이나 KB자산운용 등 다른 주주들이 같은 편에 설 것이라 믿은 듯 보인다. 신주발행·주식전환가는 당시 시가인 9만2000원 선이다. 과연 카카오는 2200억 원 가량을 투입해 시총 2조원이 넘는 에스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압도적 최대주주 등장을 막고 주주들 간 타협과 조정을 통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이사진의 판단일 수도 있다.

손자는 “적과 수년을 대치해고 결국 승부는 단 하루에 결정되는 만큼 자리, 이익, 비용 등에 집착해 적을 연구하는데 소홀했다면 결국 위태롭게 된다(相守數年, 以爭一日之勝, 而愛爵祿百金, 不知敵之情者, 不仁之至也)”고 경계했다

하이브는 10일 에스엠 인수에 1조4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4228억원으로 이 프로듀서의 지분 대부분을 인수하고 이어 삼성증권에 예치된 현금 7200억원으로 주당 12만원에 에스엠 발행주식 25%를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한다.

▶절묘한 공개매수…하이브의 희생(?), 카카오는 특혜(?)=카카오가 신주를 인수하는 가격은 당시 시가 기준으로 올 예상 주당순이익(EPS) 3800원의 약 25배 수준이다. 하이브가 제시한 12만원은 주가수익비율(PER) 31.5배로 사실상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한 값이다. 이후 에스엠 주가는 12만원에 수렴했다. 증자와 CB 발행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카카오는 시세보다도 훨씬 싼 값에 2대 주주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일반주주 입장에서 보면 하이브는 수익을 보장해주는 쪽이고 카카오는 이사회 덕분에 특혜를 누리는 모양새가 된다.

하이브는 이미 에스엠 지분 14.8%를 확보했다. 이 프로듀서 보유 잔여지분까지 합치면 함께 18.4%다. 5% 이상 지분을가진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합 보다 많다. 증자와 CB 발행이 이뤄지면 하이브 지분율은 17% 미만으로 낮아지는 반면 카카오 등 5% 이상 주주들의 지분율은 22%를 넘게 된다. 어느 쪽도 경영권 확보를 위한 30% 고지에 서지 못한다. 하이브는 공개매수 카드가 있다. 개인이나 기관 일부가 이에 응한다면 저울은 하이브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손자는 “적이 비록 높은 누각을 쌓고 깊은 참호를 차서 방비하더라도(敵雖高壘深溝) 적들이 구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을 공격한다면(攻其所必救也) 결국 아군이 싸우기 좋은 곳으로 적이 나와서 싸워야 한다(不得不與我戰者)”고 했다.

카카오가 안정적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하이브에 맞서 더 높은 값의 공개매수로 응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카카오이 이같은 반격은 오히려 증자와 CB 발행을 어렵게 해 제 발을 묶는 꼴(自繩自縛)이 될 수 있다.

▶카카오 공개매수 맞대응 어렵지만=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 목적으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상법 제418조 제2항을 위반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결(2008다50776)이다. 예전 KCGI와 경영권 분쟁 중이던 한진칼이 산업은행을 상대로 3자배정 증자를 한 데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지 않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업의 경영난 타개를 위한 긴급한 사정을 인정한 예외다. 에스엠은 기간 산업도 아니고 재무적으로 긴박한 처지에 있지도 않으며 카카오도 국책은행이 아니다.

손자는 “승리가 가능하다면 공격을(可勝者, 攻也)하고 전력이 부족할 때는 수비를 하라(守則不足)”고 가르쳤다.,

지난 1월 카카오엔터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와 싱가포르 투자사 피랩인베스트먼트(PWI)에서 1조15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절반 정도를 타법인인수에 쓸 수 있다. 카카오는 에스엠의 증자와 CB 발행조건에 ‘신주인수권을 카카오엔터에 양도할 수 있다’고 명시한 상태다. 에스엠 투자주체가 카카오엔터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카카오엔터냐 에스엠이냐…결정권은 사우디·싱가포르에=PIF·PWI의 돈을 에스엠에 투입하려면 PIF·PWI와 협의가 필요하다. PIF·PWI에게 남는 장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PIF·PWI 카카오엔터 유상증자에서 신주를 인수한 가격은 1주당 25만5116원이다. 기업가치로 11조1334억원이다. 에스엠 시가총액의 무려 4배다. 카카오엔터의 매출과 세전이익은 에스엠의 2배가 채 안된다. 수치로만 보면 PIF·PWI는 훨씬 더 높은 기대 값으로 카카오엔터에 투자한 돈을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낮은 에스엠에 투입하게 되는 모양이 될 수 있다.

비상장사인 카카오엔터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은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둔 행보일 수 있다. 주요 계열사를 모두 상장시켜 막대한 자금을 끌어 모았던 카카오 그룹의 이전 행보를 봤을 때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엔터가 에스엠을 인수하면 단숨에 우회 상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상장사와 상장사간 합병은 논란의 소지가 클 수 있다. 특히 PIF·PWI로부터 투자를 받은 가격수준이 너무 높아 합병 과정에서 에스엠 기존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무리는 하지 않을 듯=최근 카카오의 경영상황은 그리 썩 좋지 않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8% 감소한 100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도 전년 대비 0.6% 줄었고 영업이익은 4년만에 역성장했다. 당기손익은 5393억원의 적자를 냈다. 카카오페이의 부진도 계속되고 있다.

손자는 “이익이나 소득이 있거나 위태로울 때에만 싸운다(非利不動, 非得不用, 非危不戰)”고 했다. 카카오 입장에서 에스엠이 비록 탐나는 회사지만 그 동안 ‘인수’ 보다는 ‘협력’을 강조해왔던 만큼 무리를 하면서까지 경영권 확보를 시도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이 프로듀서는 에스엠을 상대로 증자와 CB발행 중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카카오측의 납입일인 내달 6일이전에는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의 공개매수(3월 1일까지) 결과는 그 전에 나온다. 하이브가 충분한 지분을 확보한다면 카카오 입장에서는 9%의 지분율로는 경영권에 도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음원제작이 카카오엔터의 주력이 아닌만큼 다수의 K-팝 스타들을 보유한 하이브·에스엠과 우호적 관계로 타협할 가능성도 아직은 열려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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