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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삼성전자의 역발상 행보를 주목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한파’ 속에서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 주목된다. 그것도 자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재원을 마련하는 이례적 행보다. 또 반도체 불황 속에 감산 얘기가 나돈 게 불과 얼마 전이란 점을 고려하면 역발상 행보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14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반도체 부문에 투자하기 위한 것으로, 연 4.6%의 이자를 주고 오는 17일부터 내후년 8월 16일까지 30개월간 단기로 빌린다.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달 31일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최대 관심사는 반도체 감산 여부였다. 시장은 대체로 삼성전자가 감산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력인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급락해 메모리사업부가 적자를 내는 등 최악의 불황 국면에 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콘퍼런스콜에서 감산을 언급했지만 수위 조절을 했다. 즉 생산라인 최적화, 미세공정 전환 등을 통해 단기적 감산 효과를 꾀하는 ‘자연적 감산’은 있겠지만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못박았다. 사실 이날 삼성전자는 역발상 행보의 단초를 내비쳤다. 콘퍼런스콜에 나선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이 “당장에 시황이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 경쟁사들이 이미 감산, 감원, 투자 축소 등에 나선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보인데 결국 이 어려운 시기에 ‘차입 투자’라는 카드까지 꺼내 든 것이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라는 주식 격언의 실천이 개인에게 어려운 일이듯 침체기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게 기업으로선 엄청난 모험이기에 실행이 쉽지 않다. 이번 삼성전자의 과감한 역발상 행보에 주목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어깃장 행보는 보는 이의 속을 터지게 한다.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8%에서 확대(대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하는 정부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만, 일본 등의 경쟁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전폭적 지원 속에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니, 한국 반도체기업들로선 속이 탈 일이다. 게다가 그동안 K-칩스법을 주도해온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에서 배제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니 “정치는 4류”라는 30여년 전 얘기가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회자된다. 서글픈 현실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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