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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자예탁금 ‘티끌’ 이자의 비밀…‘태산’ 같은 수익은 어디로[홍길용의 화식열전]
10년새 2조→6조…이자이익 급증 주요원인 중 하나
자본시장법상 고객재산…증권금융 신탁서 분리 보관
회계상 증권사 부채로 분류, 각종비용 재원으로 활용
예금보험공사 보험료·금감원 금융사 분담금 등 부과
협회·업계 임의로 비용산정…금융당국 기준 마련을

“미워하는 것이 같으면 서로 돕고(助), 좋아하는 것이 같으면 서로에게 머무르며(留), 뜻이 같으면 함께 이루려 하고(成), 이익을 같이 하면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다(死)”

전한(前漢) 때 오초7국(吳楚七國)의 난(亂)을 일으킨 오왕 유비가 ‘공범’을 포섭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이다. 명분이란 승자나 힘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질 뿐이다.

은행의 이자장사를 대통령이 질타하자 그 여파가 증권 업계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새삼스런 주제들도 아니지만 마침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권력자들이 나서면서 ‘개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궁금해진다. 지금의 은행과 증권사가 어떻게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됐는지를 과연 권력과 금융당국은 알지 못했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했던 것일까?

최근 ‘돈 잔치’ 논란이 뜨거운 은행의 예대마진 비밀은 두 가지다. 첫째 오랜 저금리로 불어난 초 저원가인 요구불예금 덕분에 조달 비용은 크게 낮아졌는데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금리가 더 높은 가계의 신용대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금리상승 기간 더 많은 가산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돈을 조달할 때는 깐깐하게 값을 치르면서 빌려줄 때는 넉넉히 값을 받는 구조다.

이와 꼭 닮은꼴이 증권사의 이자 수익이다. 오랜 저금리에서 불어난 투자자예탁금에는 아주 낮은 이용료를 지급하면서 주식투자 열기를 속에 늘어난 신용거래에는 높은 이자를 붙인다. 역시 비용을 치를 때는 깐깐하게, 수익을 챙길 때는 넉넉히 값을 매기는 구조다. 증권사들이 이렇게 얻은 이익의 규모는 사실 은행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감시도 느슨하고 정보도 잘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증권사들이 얻은 이자수익은 9조원이 넘는다. 신용공여로 거둔 수익만 2조7000억원 이상이다. 조달비용으로 치른 돈은 3조원에 불과했다. 6조원 이상 남은 셈이다. 이해 증권사 전체 순이익이 약 8조4000억원다. 이쯤 되면 증권사도 이자 장사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다.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과점체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자수익은 공정했을까?

증권사들이 2021년 투자자예탁금 이용료로 지급한 돈은 1152억원이다. 이해 투자자예탁금 평균잔고 56조원 대비 0.2%다. 투자자예탁금이 17조원이던 2011년 투자자예탁금 이용료로 지급한 돈은1602억원이었다. 아무리 금리가 낮아졌다고 해도 투자자예탁금이 3~4배 불어났는데 투자자예탁금이용료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신기할 뿐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의 재산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신탁해 안전하게 관리한다. 그런데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투자자예탁금의 지급방법 및 절차를 금융투자업규정에 위임하고 있다. 여기서 증권사가 투자자 돈으로 수익을 낼 기회가 만들어진다.

금융투자업규정(4-46조)는 금융투자업자에게 협회가 정하는 투자자예탁금이용료 산정기준 및 지급 절차에 따라 투자자에게 투자자예탁금의 이용대가를 지급하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투자자예탁금 이용료는 운용수익, 발생비용 등을 감안하여 합리적으로 산정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로 이 ‘덧붙인 한 문장’ 때문에 증권사들은 연간 수 조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 제3-7조는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의 산정 및 변경절차를 정하고 있다. 2항을 보면 ‘금융투자회사는 투자자예탁금으로부터 발생하는 운용수익과 투자자예탁금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음 각 호의 직·간접 제반비용을 감안하여 투자자예탁금 이용료 지급기준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이란 예금자보험료, 감독분담금, 지급결제 관련 비용, 인건비, 전산비, 그 밖에 금융투자회사가 투자자예탁금 관련 비용으로 합리적인 방법에 따라 산정한 비용이다. 지급기준의 변경은 증권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협회에 그 내용을 사전에 보고하는 게 유일한 규제다. 투자자가 예탁금에서 받는 운용수익 보다 증권사가 떼어 가는 비용이 더 큰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돈을 맡기면 증권사는 이를 증권금융에 맡긴다. 증권금융에서 안전하게 관리하는 돈에 예금자보험료와 감독분담금까지 부과하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 자금이 오가는 데 따른 전산 및 지급결제 비용과 그에 따른 인건비도 발생할 수 있지만 적정하게 부과되는 지 따질 필요가 있다. 증권사가 ‘합리적 방법’에 따라 산정하는 비용의 개념도 모호하다.

한국증권금융의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투자자예탁금이 관리되는 신탁계정에서 현금과 예치금의 이자율 수익은 1.7%다. 예탁금이용료율은 2020년 말 평균 0.18%에서 지난해 말 평균 0.37%로 인상됐지만 이자율 수익의 20%에 불과하다.

‘배 보다 배꼽을 더 크게’ 만드는 증권사 ‘마술’은 예전에도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모 증권사 주식계좌에 1억원을 맡겼더니 투자 수익은커녕 매매수료로만 8000만원을 가져간 유명한 일화다. 증권사들이 투자에만 집중한 투자자들이 ‘티끌’로 생각한 예탁금 이자를 모아 ‘태산 같은 수익’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문제를 과연 모르고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하지만 증권사의 원가 구조를 따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서 증권사들은 고객이 맡긴 예탁금으로 최근 4년간 1조8000억원을 넘게 벌어들인 사실을 공개하고 나서야 금감원은 다시 개선작업에 나섰다.

증권금융에서 저리로 돈을 빌려 고리의 신용융자를 제공하는 행태야 ‘장사의 영역’이니 당국이 직접 개입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예탁금이용료율 문제는 투자자보호의 문제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국가의 책무(금융소비자보호법 9조)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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