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요, 협박, 뒷돈 등 불법행위를 ‘건폭(건설현장 폭력)’이라고 지칭하고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했다. 기득권 노조의 탈법을 조폭 행태 수준으로 보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 부처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건설현장에서 관행이 된 월례비, 태업, 채용 강요, 금품 요구 등은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타워크레인 기사는 임금 이외 웃돈인 월례비를 약 1년 동안 2억2000만원이나 챙긴 것으로 정부합동 실태조사에서 확인됐다. 이를 포함해 438명이 챙긴 월례비는 총 243억원으로, 이 중 상위 20%는 1인당 최소 9500만원을 넘는 뒷돈을 받았다. 월례비를 안 주면 작업속도를 지연시키는 갑질 횡포를 일삼았다. 양대 노총의 노조원 채용 강요도 만연했다. 노조가 현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 탓에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이 같은 행태가 건설업계 피해를 넘어 분양가 상승, 입주 지연 등 국민 피해로 연결되는 만큼 이를 끊어내는 것은 정부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노조 불법행위를 방치하는 기업에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윤 대통령의 언급에서 건폭과의 타협은 없다는 단호함이 읽힌다.
그러나 이미 현장에서 관행이 된 불법 행태는 시장 참여자들의 오랜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건설하도급업체가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을 상대로 그간 준 월례비 6억5000만원을 돌려 달라고 낸 소송에서 기사들이 2심까지 승소한 것이 이 같은 현실을 말해준다. 1심에선 월례비는 법적 근거가 없고 잘못된 관행이라면서도 다만 건설업체도 이해관계가 맞아서 준 돈이니 돌려받을 수 없다고 했다. 2심은 1심과는 또 달리 아예 월례비를 일종의 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묵시적인 계약이 있었고 수십년간 지속돼왔기 때문에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뒷돈’ ‘웃돈’이 관행이 되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타워크레인 계약을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에 떠넘기는 갑질부터 시정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월례비가 월 급여를 적게 책정하고 공기 단축과 연계하는 방식에 따른 산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월례비 일부를 양지로 끌어들여 정상적 임금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동개혁은 호락호락한 싸움이 아니다. 상대를 힘으로만 밀어붙여서는 갈등만 증폭된다. 잘못된 관행이 배태된 역사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합리적 대안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개혁에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