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3일 고민 끝에 기준금리 동결(3.50%)을 결정했다. 그동안의 일곱 차례 인상 행진도 멈췄다. 금리 결정은 물가 동향, 경기 상황, 자금 유출입,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 부담, 그리고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움직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고차방정식과 같아서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동결 결정에 앞서서도 미국 변수가 금통위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애초 미 연준도 3월에 피봇(Pivot·긴축완화로의 정책 전환) 가능성이 점쳐졌는데 예상보다 강한 미국 경제가 연준 내 매파(긴축 선호)의 목소리를 부각시켰다.
즉 지난달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월 대비 0.5%로 반등했고, 1월 고용도 51만7000명(비농업)으로 예상치(18만명)를 훌쩍 웃돌았다. 또 2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50.5를 기록하며 전월의 46.8을 넘어섰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의미한다. ‘노 랜딩(No landing·미 경기 과열이 진정되지 않고 물가도 계속 오르는 것)’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이에 미 연준이 3월에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뉴욕증시가 급락하고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요동쳤다. 22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이 아니었으면 금통위도 이날 긴축 고삐를 당겼을 가능성이 크다. 의사록에 따르면 여러 경기 과열지표에도 회의 참석자 대다수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베이비스텝)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 많은 참석자가 긴축 정책을 언제까지 유지할지에 대해 검토하면서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앞으로도 경제 상황 개선 여부를 평가하는 데에 적절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 연준의 숨고르기 의지가 드러난 만큼 금통위도 ‘경기 침체’에 초점을 맞춰 동결 결정을 내리는 데에 한결 부담이 줄었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여전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에 이르는 데다 미 연준이 3월과 5월에 베이비스텝일지라도 긴축 기조를 지속한다면 미 기준금리가 5.00~5.25%로 높아져 양국 간 금리 격차에 따른 자금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가 4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잘한 일이다. 한은이 여전히 물가안정에 방점을 찍고 있고, 자본유출 차단, 환율 방어 등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인플레 파이터’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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