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10년이 되는 어떤 실험이 있다. 일종의 ‘실험실 밖의 실험’이다. 지금까지 이 실험에 투입된 현금은 527억원이다. 운영비를 제외하고 계산된 가치만 그렇다.
실험 대상은 ‘착한 일을 하는 작은 기업들’이다. 착한 기업을 칭찬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많은데 왜 실험인가. 심지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행된 실험이다.
이쯤되면 참 이상해 보이는 이 실험은 지난 2013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안한 SPC(Social Progress Credit·사회 성과 인센티브)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실험의 가설은 이렇다. 첫째, 기업이 착한 일을 얼마만큼 했는지 시장에서 정확하게 화폐가치로 인정해줘야 한다. 둘째, 그 정보를 기반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시장이 생겨야 한다. 셋째, 기업은 착한 일을 더 많이 할 것이다. 넷째, 세상 전체가 더 착해지고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다섯째, 기업은 더 지속 가능하게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때의 ‘착한 일’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설의 증거를 찾고자 지난 2015년부터 ‘사회 성과 인센티브’라는 프로젝트성 실험이 시작됐다.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총 326개의 작은 기업의 사회문제 해결량을 측정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봤다. 측정과 보상의 효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에서 일부 검증됐다. 효과성을 더 정교하게 살펴보기 위해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사회 성과가 경제 성과만큼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뤄졌으나 개념적으로는 일반 영리기업들도 사회문제를 해결한 만큼 시장에서 그 가치를 다양한 크레디트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제도까지 구상해보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이 실험이 받았던 질문을 상기해보면 그때는 꽤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착한 일 하느라 어려운 기업들은 도와야 할 대상이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 정책으로 할 일을 왜 대기업이 하느냐’ ‘사회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했는지 어떻게 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 ‘굳이 돈으로 환산해야 하는 것인가’ ‘화폐가치로 인정되더라도 시장에서 그 가치를 누가 사간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팔 수 있는 것인가’ 등의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 가설들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더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전 사회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업이 동참하는 것이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문제는 정부보다 기업에서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측정하는 방법론도 다양해졌다. 거기다 최근 확산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평가지표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투자받을 수 없다고 기업을 압박한다.
ESG는 명실상부하게 시장 패러다임이 됐다. 이미 사회문제 해결의 교환가치를 반영하는 자발적 탄소거래시장, ESG 금융시장이 성립되고 있다.
10년 전의 가설이 새로운 모색이었는데 지금은 새롭지 않은 당연한 것이 된 것처럼 앞으로의 10년 후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지금과 같은 사회·환경 성과의 시장화와 그로 인해 형성된 부가 아직도 많은 사회·환경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으로 이전되고 있는지, 종적으로는 어떻게 세대 이전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는 사회문제 해결을 시장의 방법으로 했을 때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 자연 이전되는지에 대한 관심이다. 또 그때가 되면 기업은 어떤 시대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가설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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