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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자연의 현장에서] 공사비 분쟁에 속터지는 수분양자

“잔금까지 다 납부했는데 왜 임시 거처를 전전하며 떠돌아야 하는 거죠? 학교 적응할 시기에 전학을 고민해야 하는 아이들은 무슨 잘못인가요. 사인 간 분쟁이라며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데 그럼 하루하루 계속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하는 건가요?”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며 애꿎은 일반분양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달 1일 입주가 예정됐던 서울 양천구 신목동파라곤(신월4구역 재건축)의 수분양자들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내 집’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다. 사업자인 재건축조합과 시공자인 동양건설산업 사이에 벌어진 공사비 분쟁이 해결되지 않자 시공사가 컨테이너로 입주를 막는 유치권 행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잔금부터 관리비까지 모두 납부했음에도 이삿짐을 풀지도 못한 채 모텔과 에어비앤비 등 임시 거처를 전전하는 상황이다. 기약 없는 시공사와 조합 간 줄다리기에 월셋집을 구한 예비 입주자도 나타났다. 또 다른 수분양자는 며칠 뒤면 임시 거처에서도 나가야 하는 처지인데 잔금을 내는 데 돈을 다 써버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입주가 막혀 전입신고도 못한 채 개학을 맞은 학생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임시 거처에서 원거리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예정된 전학을 가지 못하고 이전 학교에 남아 있는 신세다. 40대 수분양자 박모 씨는 “오죽하면 ‘컨테이너를 밀고 들어가야 하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사인 간 분쟁이지만 교육청과 협의해 전입신고를 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사비를 둘러싼 이견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두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동양건설은 100억원 상당의 증액을 요구하지만 조합은 “시공계약 당시 소비자물가 3% 이상일 때 협의조정, 상세 내역 제시 등을 전제로 했는데 근거가 부실하다”면서 “단순 통보와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건설사의 유치권 행사에 대해 지난달 서울남부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황인데 이번주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 사례는 다소 극단적으로 비치지만 최근 급격히 오른 공사비를 고려할 때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공사비로 시공사와 분쟁 중인 단지들이 한둘이 아니고,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분쟁이 늘어날 여지가 커 앞으로도 유사한 갈등이 비일비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올해 입주를 앞둔 강남구 대치푸르지오써밋와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도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를 재건축조합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공사 및 입주 지연이 거론되고 있다. 한 재건축 사업 조합장은 “시공사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 공사비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도 조합원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명확한 내역 없이 몇 퍼센트 올랐다는 식이면 분쟁이 생기는 법”이라며 “조율을 위해 합리적인 청구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관건은 이해할 수 있는 공사비 증액에 대한 검증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노력이 절실하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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