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민원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가 손해사정제도다. 이는 손해 발생 사실 확인 및 손해액 산정 등을 위한 절차로, 손해보험상품이나 제3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보험회사는 손해사정사를 고용 또는 선임해 손해사정업무를 위탁해야 한다. 그런데 보험 민원 중에서 보험금 산정이나 지급과 관련된 민원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보험금 산정·지급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손해사정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에 따라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감독당국과 보험업계는 손해사정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위탁손해사정사 평가 기준 수립 의무화, 손해사정사 선임 동의 기준 등에 대한 설명의무 신설, 대형 손해사정업자의 영업기준에 대한 규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보험회사가 손해사정사를 고용해 손해사정업무를 담당하게 하거나 자회사인 손해사정업자에 손해사정업무를 위탁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자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이른바 ‘자기손해사정 금지’ 또는 ‘셀프손해사정 금지’ 논의인데 손해사정업무를 보험회사 자체적으로 또는 자회사가 담당하는 것을 금지하고 제3자에 위탁하게 함으로써 손해사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손해사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기손해사정 금지가 손해사정의 공정성·객관성 확보나 소비자보호를 위한 적정한 수단이자 해결방안이 될수 있을지에는 이런저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손해사정업무를 보험회사나 자회사가 아닌 제3자가 수행하게 강제하면 손해사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자동으로 확보될 수 있는 것인가? 손해사정 결과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손해사정업자의 전문성도 필수 요소인데 이러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손해사정업자가 시장에 충분히 존재하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또한 손해사정업무의 제3자에 대한 외부 위탁을 의무화하는 경우엔 관련비용 증가나 서비스 품질저하 등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무엇보다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결정하는 것은 원래 보험회사의 본질적 업무다. 그런데 보험금 지급 여부의 심사·결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손해사정업무에 대해 보험회사 스스로 수행하거나 자회사 위탁을 금지하고 제3자에게 위탁하는 방식만 허용한다면 이는 보험회사의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업무수행 방식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일 수 있다.
손해사정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자기손해사정 금지를 통해 이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막연한 기대일 수 있다.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금지보다는 손해사정과 관련된 보험회사 및 손해사정사의 의무 또는 금지행위 등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감독을 통해 손해사정의 공정성·객관성 및 손해사정 결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적정할 것이다.
보험회사가 손해사정업무를 누구에게 위탁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로부터 위탁을 받아서 손해사정업무를 수행하든 해당 업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수행함으로써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손해사정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손해사정제도 개선 및 관련 규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백영화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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