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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존재가 폭력당할 이유가 돼서는 안된다

필자가 지도하는 ASAP 호신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는 성적 폭력을 당할 수 있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때로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며, 과거 몇 차례는 지정성별에 무관하게 성소수자들을 위한 강습회를 실시한 적도 있다.

그 중 한 번은 교육을 요청한 기획자가 성소수자였는데 기획 이유는 밤길 친구들이 여러 번 안 좋은 일을 겪어서였다고 했다. 두루뭉술하게 말했지만 성소수자 혐오린치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왔다. 성소수자들은 정말 ‘그런 존재’라는 또는 ‘그런 존재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다양하고 심각한 혐오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겉보기에 남성인 성소수자는 신체적으로 약하지 않을 거라 여겨 다수 또는 무기 등의 압도적인 ‘힘’을 동원해 기습하는 가해자도 많다.

물론 겉보기에 여성이라고 이런 부담과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해자는 또 겉보기에 여성이기 때문에 더 위협적이고 과시적으로 잔인한 폭력을 구성할 수 있다. 요는 어느 성별이든 젠더 혐오가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로 보이거나 성별 역할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폭력에 노출될 위험도가 가중된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많은 남성이 어린 시절 들어봤을 “사내새끼가 남자다워야지” 같은 맨박스의 강요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오히려 ‘헤픈 여자’ ‘인생 망친 여자’ 등으로 비난받거나 그래서 더 쉽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성폭력 대상으로 여기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감추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폭력 역시 커밍아웃·아우팅의 부담 때문에 더 드러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거란 계산은 폭력의 정도를 쉽게 가중시킨다. 그리고 집단 내에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입장이라면 약자를 바라보는 데에 있어 딱히 우선순위는 없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 짱 선도부장 무리 중 한 학생이 평소에는 선도부장과 맞먹는 듯하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야, 내 가오(체면) 좀 세워줘라”했다가 주제도 모른다고 두드려 맞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얼마나 어떻게 위험할 수 있느냐”를 따지고 줄 세우는 불행배틀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가해자는 언제나 피해자가 그만큼 당할 짓을 했고 자신은 그럴 만했다고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강자의 논리를 내세운다. 성별뿐 아니라 인종, 출신 지역, 학교, 빈부격차 등을 놓고 내가 한 대 더 맞았네, 넌 배 맞았지만 난 얼굴입네 하는 피해자 간 다툼은 오히려 가해자들이 폭력의 수위를 조절해가면서 피해자들을 억압하고 조종하기 좋은 빌미가 될 뿐이다.

따라서 애초에 ‘당할, 그럴 만한 짓’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해체해야 한다. 하물며 ‘그 짓’이 존재 자체여서야 되겠는가. 폭력을 둘러싼 담론이 결국에는 ‘모든 폭력은 나쁘다’로 귀결되는 이유이며, 집단 간 갈등이 점점 격화되는 우리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김기태 ASAP 대표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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