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까지 급전을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이 27일 시작되자마자 반응이 폭발적이다. 예약을 받은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와 콜센터가 한때 마비될 정도였다. 전화는 먹통이고 인터넷은 할 줄 모르는 노년층은 직접 상담창구로 몰려들었다. 당장 수십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딱한 처지의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고금리와 경기부진의 그늘이 짙다.
이날 시작된 소액 생계비 대출은 신용 평점이 하위 20%이고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앞으로 4주 동안의 상담예약을 지난 22~24일 받았는데 2만5144명이 신청했다. 4주간 상담인원의 98%가 사흘 만에 꽉 찬 것이다. 애초 상품 출시 전엔 금리와 한도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 상품의 대출금리는 최초 연 15.9%다. 금융교육을 이수하고 성실히 상환하면 연 9.4%까지 낮출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긴급생계비 명목인데 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서민을 상대로 고리대금업 장사를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한 저소득층은 급전 마련을 위해 불법 사금융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본인 명의로 개설한 휴대전화를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으로 넘기고 소액을 빌리는 ‘휴대폰깡’이 대표적이다. 불법 사금융업자들이 이런 대출을 ‘내구제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이름과 달리 취약계층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악질적인 수법이다. 연 수백~수천%의 살인적 금리로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다.
올해 소액 생계비 대출에 투입된 재원은 1000억 원으로, 10만명 정도가 받을 수 있다. 긴급 생계비에 목마른 취약층이 생각보다 많다는 게 확인된 만큼 추가 재원 확보가 불가피하다. 올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은행권이 각각 500억원을 냈는데 고금리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은행권 기부금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정부가 28일 내년도 예산안 지침을 발표하면서 취약계층 지원을 더 두텁게 하겠다고 한 만큼 예산안 반영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번 소액 생계비 대출의 흥행은 ‘착한 동기’가 경제약자를 잡는 역설을 되돌아보게 한다. 2002년 연 66%에 달했던 최고이자 규제는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일곱 차례 인하로 2021년 20%로 낮아졌다. 저금리 기류도 반영됐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조달비용이 늘어난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중단하면서 저신용자의 돈줄이 꽉 닫혀버렸다. 현실을 도외시한 규제는 서민을 ‘사채 지옥’으로 내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