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은 산호세(San Jose)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실리콘밸리 하면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실리콘밸리는 행정상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여러 카운티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중 산호세시(市)는 샌프란시스코 남단 산타클라라 카운티에 속한 도시로 ‘실리콘밸리의 심장(The Heart of Silicon Valley)’을 슬로건으로 내세울 만큼 가장 상징적인 도시이다.
산호세는 맨호세(Man Jose)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남자(Man)와 산호세(San Jose)의 합성어로, 남성 인구 비율이 높은 현실을 말해준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별칭에서 탈피해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DEI(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 연례 보고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DEI는 구성원들의 인종, 성별, 나이, 종교 등의 다양성을 파악하고, 구성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문화 관점을 의미한다. DEI를 위해 여성의 비율과 같은 지표를 측정하거나, 다양한 인종과 소수자를 알리기 위한 헤리티지 먼스(Heritage Months)와 같은 비계량적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월은 블랙 히스토리 먼스(Black History Month)로 흑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념하는 행사가 기업 내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2022년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포천 500대 기업 중 53%가 최고다양성책임자(CDO·Chief Diversity Officer)를 두고 있다고 한다. CEO, CFO처럼 조직 내 다양성 부문의 최고 책임자이며 특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는 CDO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CDO는 DEI 관련 커뮤니케이션 및 교육을 관리함과 동시에 다양성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내 조직문화와 정책을 발전시킨다. US 뉴스에서는 산업 전문가들이 꼽은 ‘2023 ESG 트렌드 5가지’를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DEI의 중요성이다. 투자 기관들 또한 DEI를 기업의 성공과 장기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DEI가 기업의 계량적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재무지표가 기업의 가치평가에 있어 중요해지자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에서는 오는 6월 말에 국제표준 ESG 공시기준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구체적인 사항은 미정이나 한국도 이를 도입할 예정이며 2030년에는 코스피 상장사 전체를 대상으로 ESG 공시를 적용할 계획이다. 최종안에는 기후 관련 공시 기준과 더불어 후속 기준으로 DEI가 유력한 후보로 고려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DEI를 ESG 경영의 중점 과제로 선정하거나 다양성·포용 관련 최고책임자를 지정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ESG 측면에서도 DEI는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혁신의 근원을 다양성이라 말한다. 다양성은 단지 여성 조직원의 수를 늘리거나 성소수자를 고용하는 등의 규정을 뜻하지 않는다. 직원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차별받지 않고 본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DEI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는 만큼, 우리 기업의 주도적인 DEI 비전 수립과 DEI 감수성 향상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서지원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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