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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물가둔화세에 찬물 끼얹은 OPEC+ 기습 감산

국제유가가 잠잠해지던 물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 회원국들이 기습적으로 하루 116만배럴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는 소식에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한때 8% 이상 오르며 배럴당 85달러까지 치솟았다가 6%(4.57달러) 상승한 80.2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5.7%(4.56달러) 오른 84.4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둘 다 1년 만의 최대폭 상승이다.

유가 방어를 위한 산유국들의 결속은 추세적이다. 지난해 10월 OPEC+ 회의에서 하루 200만배럴 감산에 합의했고, 러시아는 하루 50만배럴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감산물량까지 합하면 지난해 10월과 비교해 하루 총 366만배럴의 원유 생산이 줄어드는 셈이다. 세계 원유 수요의 약 3.7%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배럴당 최고 120달러(브렌트유 기준) 정점을 찍은 뒤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과 초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최근 70달러 내외에서 안정세를 찾아가던 국제유가가 이번 감산 쇼크로 연말 다시 100달러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OPEC+가 지난해 감산을 결정할 때와 달리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요인들이 지금은 더 많다는 점이다. 미국의 여름철 휘발유 수요 성수기인 ‘드라이빙 시즌’이 오는 6월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탈피로 하반기 원유 수요는 더 늘 수 있다. 원유 가격이 에너지 등 생활필수재 가격을 밀어올릴 요인이어서 물가둔화세에 긴축 완화로 방향을 틀려던 각국의 움직임이 차질을 빚게 됐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국내 물가상승률은 4.2%였다. 지난해 3월(4.1%) 이후 1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이다. 석유류가 두 달째 하락하고 가공식품의 상승세도 둔화된 데 힘입었다. 연간 물가상승률 3.5% 목표로 순항하던 국내 물가가 OPEC+의 추가 감산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원유와 원유를 가공한 석유류는 각종 제품에 중간재로 쓰이기 때문에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에너지 가격 인상이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분기 물가에 주는 악영향 우려 탓에 정부·여당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유보한 상황인데 유가가 지금보다 더 오르면 가격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유가 추이를 기민하게 살피면서 물가 대응을 더 선제적으로 가져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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