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5.0% 올랐다. 상승률이 5%대로 낮아진 건 18개월 만이다. 2월의 6.0%에 비해 큰 폭으로 둔화한 것으로, 2021년 4월 이후 최저치다. 에너지 물가와 중고차 물가가 각각 6.4%, 11.2%씩 크게 하락한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던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글로벌 금리의 향방을 결정하는 미국 CPI가 상승률 둔화세를 보이면서 세계 각국도 한시름 놓게 됐다. 앞서 한국은행은 3월 소비자물가가 1년 만의 가장 낮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4.2%)을 보이자 금리를 2회 연속 동결하면서 3.5%에 묶어뒀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이면서 2분기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통화정책 여력을 갖추게 된 것은 다행이다. 시장에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다음달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끝으로 긴축 사이클을 멈출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CPI다. 주거비와 서비스물가 상승으로 전년 대비 5.6%로, 2월(5.5%)보다도 올라 27개월 만에 근원CPI가 전체 CPI를 추월했다. 전월 대비로도 0.4%로 상승해 서비스물가가 여전히 끈적거리며 하락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물가지수는 4.8%로, 전체 지수보다 0.6%포인트나 높았다. 여기에 최근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개발기구플러스(OPEC+)의 감산계획이 현실화되면 앞으로 에너지 및 석유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물가 악영향을 우려해 보류했던 전기·가스요금을 더는 묶어둘 수 없게 된다. 석유류를 원자재로 하는 가공식품과 외식 서비스물가도 재차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가 “아직은 정책 우선순위가 경기 대응보다 물가안정”이라고 밝힌 이유다.
시장의 예상대로 미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이면 미 기준금리(5.00∼5.25%)는 한국보다 1.75%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폭으로는 최대 기록이다. 이리 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원화가치 급락은 수입 원자재와 상품가격을 끌어올려 물가불안을 다시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금리동결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한은이 애써 눌러온 통화량을 금융당국의 인위적 대출금리 인하 압박으로 그 효과가 반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긴밀히 소통해 정책 엇박자를 막아야 한다. 물가불안이 만악의 근원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