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중앙처리장치) 부문의 최강자인 미국 인텔이 영국 반도체 팹리스(설계)업체인 ARM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인텔은 CPU에서 벗어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시장 확대를 모색해왔는데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가진 ARM과 손잡은 것이다. 인텔이 과거 경쟁 상대와의 전략적 동맹을 맺는 ‘적과의 동침’을 불사하며 파운드리시장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 부문 2강인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과거 글로벌 PC·노트북용 CPU 제조를 독식하던 인텔은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며 TSMC와 삼성전자에 위상이 완전히 밀렸다. 인텔은 TSMC와 삼성으로부터 시장을 되찾겠다며 2021년 파운드리사업에 재진출했고 2024년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2025년 1.8나노 공정 양산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파운드리는 공정이 미세할수록 첨단이고, 지금까진 지난해 TSMC와 삼성이 양산에 성공한 3나노 공정이 가장 앞선 기술이다. 이번 ARM과의 제휴로 2025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둔 TSMC와 삼성을 한 번에 추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애플은 TSMC에, 퀄컴은 삼성과 TSMC에 번갈아가며 반도체 제조를 의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의 참전으로 애플과 퀄컴은 제조를 맡길 선택지가 늘었다. 기존 파운드리와 경쟁을 붙여 단가 인하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TSMC와 삼성은 가격 협상에서 종전보다 불리해질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으로 가져오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인텔의 굴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TSMC와 점유율 격차를 줄이는 데에 애를 먹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인텔의 추격까지 방어해야 할 형편이다. 지난해 4분기 삼성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5.8% 수준이다. 반면 TSMC 점유율은 3분기 56.1%에서 4분기 58.5%로 올랐다. 이에 따라 삼성과의 격차는 40.6%포인트에서 42.7%포인트로 늘었다. 올 1분기 TSMC의 점유율은 60%대로 올라설 것으로 보여 격차는 더 벌어질 판이다.
TSMC에 밀리고 인텔에 쫓기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이게 된 삼성의 활로는 결국 초격차 기술 확보밖에 없다.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미래 기술인 2나노 양산에 돌입해 시장 선점에 나서야 한다. 지금 반도체경기 사이클이 최악의 불황 국면이지만 인재양성과 미래 기술투자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온 삼성의 저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