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처럼 만에 여야 합의로 6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재외동포청과 달리 정부의 이민청 신설 계획은 여야 간, 행정부 입법부 간 갈등으로 좀처럼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민정책의 핵심은 외국인력을 적극 유치해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감소세인 생산가능인구를 보완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쟁력을 평가할 때 인구 규모는 여전히 중요한 지표다. 역사적으로도 부강했던 국가들은 많은 인구를 기초로 해 노동력, 실물 자본 등 양적 요소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AI, 챗GPT 등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과연 양적인 인적 자원의 성장만으로 지속 발전할 수 있을까.
영화 ‘인턴’의 주인공 벤 휘태커는 수십년간 근무했던 회사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시니어인턴으로 채용돼 기존에 주어진 단순 업무를 넘어 훨씬 폭넓은 다양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간다. 종국에는 그 회사의 CEO이자 여 주인공인 줄스 오스틴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양적 성장의 지표인 인구학적 측면에서 벤 휘태커는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계나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중요한 노하우가 주인공에게 내재돼 있다. 이와 같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른바 ‘암묵지’가 이뤄낸 성과는 인적 자원의 질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1993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혁신을 강조하며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후에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인 발언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인 메시지들의 힘이 2류, 3류를 압도하고 있는 듯하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이후 신입사원을 그 지역 대학 졸업생들이 일정 비율 선점함에 따라 공정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함께 공직사회에서는 입법부에 억눌린 행정부의 한계 등으로 인해 유능한 인재들의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적 자원 경쟁력 순위는 아쉽게도 OECD 38개 국가 중 24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역사를 살펴보면 좁은 국토 면적과 천연자원의 부족 등 지정학적 한계로 인해 노동력과 실물 자본보다는 인적 자원의 질적 향상이 항상 절실했었다. 이제부터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율 등을 고려해 국가 차원의 인적 자원 경쟁력과 질적 성장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다.
인적 자원의 진정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여야 간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필요하다. 전 세계를 누비며 각종 스포츠와 K-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월드클래스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젊은 세대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한편으로, 1970년대 중동에서 맨주먹으로 건설 현장을 누비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기존 세대는 갈고 닦은 근면 정신과 노하우가 있다.
이들과 함께 오직 국익이라는 가치에 집중해 미래를 준비해가는 정부와 여야로 구성된 ‘코리아 원팀’을 이뤄 대한민국의 진정한 질적 성장을 이뤄내기를 기대해본다.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