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떨어져 신규 세입자 보증금으로는 기존 세입자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비중이 전체 전세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다. 전세사기 충격파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역전세가 또 한 번 시장을 뒤흔들 쓰나미로 닥칠 우려가 크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4일 한은의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집을 팔아도 세입자 보증금에 못 미치는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지난해 1월 2.8%(5만6000가구)에서 올해 4월 8.3%(16만3000가구)로, 3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도 같은 기간 25.9%(51만7000가구)에서 52.4%(102만6000가구)로, 1년3개월 만에 2배 늘어났다. 깡통전세는 평균적으로 기존 보증금 대비 매매 시세가 2000만원 정도 낮았다. 깡통전세 상위 1%는 매매 시세가 보증금과 1억원 이상 차이가 났다. 역전세는 기존 보증금 대비 현재 전세가격이 평균 7000만원 정도 하회했다. 역전세 상위 1%는 전세 가격과 보증금 차이가 3억6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대규모 역전세 상황은 유례 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20년 8월 법 통과 후 시장 전세매물은 급감하고, ‘임대료 인상률 5%’를 피한 신규 계약의 전셋값은 급등했다. 그런 상황이 정점으로 치닫던 2021년 하반기에 체결된 전세계약 만기가 올 하반기에 몰리는데 금리 인상 여파로 작년 하반기부터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돈을 융통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역전세난’은 당장 다음달부터 현실화할 수 있다. 내년 6월까지 매달 5만3000가구씩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역전세는 어디까지나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문제로, 임대인이 보증금 상환의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현재 ‘역전세 상황’이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이를 방치하면 부동산시장이 큰 혼란에 빠지고 세입자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올해 들어 4월까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지급한 ‘전세보증 사고’금액이 1조830억원에 이른다.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대출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간신히 안정세를 찾은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지금 20% 수준인 아파트의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비중을 높이는 등 자체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