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둘은 능력, 의지, 의도 등의 개입에서 갈린다. 최근 사회 문제로 비화된 전세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세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것과 못 돌려주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전세사기, 후자는 전세사고로 귀결된다. 하지만 현재 전세사기와 전세사고 두 단어가 혼재돼 사용되는 느낌이다. 사기를 의도한 악성 임대인이 ‘예상치 못한 사고일 뿐’이라는 변명 뒤에 숨거나 선의를 가진 집주인들은 자금여력이 부족해졌다는 이유로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기도 한다.
최근 수개월간 정부, 언론, 정치권의 관심사는 전세사기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의 이른바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희생자가 올해에만 4명이 나온 만큼 사안의 시급성이 크다는 판단이었을 테다. 물론 전세사기로 인한 선량한 희생자를 막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업소, 임대인 등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더 큰 시한폭탄은 역전세난’이라고 지적한다.
부동산 호황기로 전셋값이 정점을 찍었던 2021년 하반기에 계약된 전셋집들의 만기가 다가오는 만큼 시장에선 ‘역전세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이달 발간한 ‘금융·경제 이슈분석(6월):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지난해 1월 2.8%(5만6000가구)에서 지난 4월 8.3%(16만3000가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25.9%(51만7000가구)에서 52.4%(102만6000가구)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4월 기준 깡통전세 주택은 평균적으로 매맷값이 기존 보증금보다 약 2000만원 낮았고, 역전세의 경우 기존 보증금보다 현재 전세 시세가 평균 7000만원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팔아도 돌려줄 보증금 2000만원이 부족하고, 새 세입자가 구해져도 돌려줄 보증금 7000만원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깡통전세·역전세 집주인들을 무조건 사기꾼 혹은 투기꾼이라 비난할 수 없다. 갭투자는 불법이 아니다. 집값 상승기였던 2021년에는 조급했던 수요자들의 현실적인 내 집 마련 수단이기도 했다. 집주인들이 가진 사연도 저마다 다르다. 개개인을 탓하기보다는 정부가 지금과 같은 역전세난에 대비할 정책, 무리한 갭투자를 예방하기 위한 방지턱을 마련했어야 했다.
이런 면에서 전세사기의 해법으로 전세 폐지론이 언급된 건 분명 성급한 판단이었다. 다행히 “전세제도가 그동안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후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정리하며 논란은 다소 가라앉는 모습이다.
‘제도의 부작용이 있으니 그 제도를 없애겠다’는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부작용이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맞는 개선책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은 전세사기와 전세소멸론의 갑론을박이 아닌 역전세난 대응책 마련에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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